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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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와 女人-성낙일**
바다와 나와 女人 ◆성낙일◆ 여인아 우리 일생에 단 한번은 하늘과 바다가 어울린 그 기슭에 초롱같은 우리 둥지를 틀자. 날개 있는 것들이 놀라지 않게 하늘과 물빛 지붕을 올리고 해 뜨고 지는 곳으로 창을 내자. 싱싱한 바다의 비린내 맡으며 너는 조개 줍고 나는 고기잡고 우리 그렇게 푸른 나이로 살자. 바다가 그어놓은 파도의 음계 위에 물오른 고기가 통통 몸을 튕길때면 나는 노래를 부를께, 너는 춤을 추렴 별이 이마 위에서 빛날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 많은 밤은 하늘처럼 바다처럼 사랑하자 서로를 보다 닮아버린 공간에서 바다에 별을 내려놓으면 하늘에 그물을 던지듯.
2020.07.31 -
**숲속의 장례식-최창균**
숲속의 장례식 ◆최창균◆ 죽은 나무에 깃들인 딱따구리 한 마리 숲을 울리는 저 조종 소리 푸른 귀를 열어 그늘 깊게 듣고 있는 고개 숙인 나무들의 생각을 밟고 돌아 다음은 너 너 너 너 넛, 다시 한번 숲을 울리는 호명 소리 한 나무가 죽음의 향기로운 뼈를 내려놓는다 따르렷다 따르렷다 딱따구리 한 마리가 숲을 뚫는다 마침내 그 길을 따라 만장을 휘날리는 나무의 행렬들 ========================================================================== 나무들은 싹이 터서 죽을 때까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 평생 태양을 숭배하며 한 뼘씩 수직의 계단을 올라간다. 어떤 나무도 궁극 태양의 사원에 당도하지 못하지만 저마다 자신의 정점에서 죽는다. 나무들은 ..
2020.07.29 -
**배호-파도**
파 도 ●배호●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사람을 못잊어 웁니다 파도는 영원한데 그런사랑을 맺을수도 있으련만 밀리는 파도처럼 내사랑도 부서지고 물거품만 맴을도네 그렇게도 그리운정 파도속에 남기고 지울수 없는 사연 괴로워 웁니다 추억은 영원한데 그런이별은 없을수도 있으련만 울고픈 이순간에 사무치는 괴로움에 파도만이 울고가네
2020.07.27 -
**미니 붕어빵 민희 씨-박형권**
미니 붕어빵 민희 씨 ◆박형권◆ 붕어빵 민희 씨가 빵틀을 돌린다 누구나 직업으로 세상을 헤엄치듯 민희 씨도 세상 위에 연탄 한 장 올려놓고 우리 골목 초입을 열기로 데운다 오늘도 민희 씨는 눈이 많이 내리면 이글루를 지어 들어가서 자겠다던 낭만주의자를 생각한다 차가움을 쌓아올려 더운 열기를 만드는 추운 나라의 건축기술처럼 알코올을 쌓아올려 염병할 행복을 지으려다 술병의 탑을 쌓고 만 그를 생각한다 민희 씨가 데워놓은 훈기에 안겨 꿈의 끝까지 헤엄쳐간 이글루 아직도 눈이 내리면 슬픔도 축포처럼 황홀하다 겨울이 가기 전에 민희 씨는 팥소 같은 꿈들에게 지느러미를 달아준다 혼자 올 때는 물풀을 생각하고 둘이 올 때는 물풀들을 생각하는 집으로 가는 길목 어서 저어가라고 지느러미를 달아준다] 민희 씨의 귀 뒤에는..
2020.07.25 -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김해자**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 ◆김해자◆ 밥 먹으러 오슈 전화 받고 아랫집 갔더니 빗소리 장단 맞춰 톡닥톡닥 도마질 소리 도란도란 둘러앉은 밥상 앞에 달작지근 말소리 늙도 젊도 않은 호박이라 맛나네, 흰소리도 되작이며 겉만 푸르죽죽하지 맘은 파릇파릇한 봄똥이쥬, 맞장구도 한 잎 싸 주며 밥맛 없을 때 숟가락 맞드는 사램만 있어도 넘어가유, 단소리도 쭈욱 들이켜며 달 몇 번 윙크 하고 나믄 여든 살 되쥬? 애썼슈 나이 잡수시느라 관 속 같이 어둑시근한 저녁 수런수런 벙그러지는 웃음소리 불러주셔서 고맙다고, 맛나게 자셔주니께 고맙다고 슬래브 지붕 위에 하냥 떨어지는 빗소리 ============================================================================ 다 저녁..
2020.07.23 -
**할아버지-오탁번**
할아버지 ◆오탁번◆ 느티나무 아래서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말복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달려오던 빨간 자동차가 끽 멈춰섰다 운전석 차창이 쏙 열리더니 마흔 살 될까 말까 한 아줌마가 고개도 까딱하지 않고 - 할아버지! 진소천 가는 길이 어디죠? 꼬나보듯 묻는다 부채를 탁 접으며 나는 말했다 - 쭉 내려가면 돼요, 할머니! 내 말을 듣고는 앗, 뜨거! 놀란 듯 자동차가 달아났다 우리나라에는 단군할아버지 말고는 ‘할아버지’라고 부를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유관순 누나 생각하면 나는 어린이집에도 아직 못 간 앱솔루트 분유 먹는 절대적인 갓난애야! ‘할아버지’라니? 고얀 년 같으니라구! =====================================================================..
2020.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