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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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잡아-신현정**
무지개를 잡아 ◆신현정◆ 이제라도 무지개를 잡아야겠다는 것이야 무지개를 잡았다 하면 적어도 일곱 색깔 그대로 일곱 번은 친친 감아쥐고서 방금 세차게 지나간 소나기마저 비틀어 짜내고서는 그래놓고서는 지상에 던져놓는다는 것이야 어디로 보나 공작새로는 훌륭하겠지 사육하는 거야 모이를 뿌려주면서 그래서 정오만 되면 날개를 활짝 편다는 도도한 그걸 내가 쪼그리고 앉아서 공작새를 즐기겠다는 것이야. ============================================================================= 당신이 잡아놓았던 무지개, 어디서 자라고 있나요. 눈부신 일곱 빛깔 뽐내며 어디서 상서로운 열매를 쪼고 있나요. 촤르르~ 깃 한 번 펼치면 먹구름 걷혀 오십 일 장마가 그치고, 촤르..
2020.09.16 -
**[이해인 수녀의 詩편지](35) 비 온 뒤 어느 날**
비 온 뒤 어느 날 ◆이해인◆ 은행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비에 쓰러졌던 꽃나무들이 열심히 일어서며 살아갈 궁리를 합니다 흙의 향기 피어오르는 따뜻한 밭에서는 감자가 익어가는 소리 엄마는 부엌에서 간장을 달이시고 나는 쓰린 눈을 비비며 파를 다듬습니다 비 온 뒤의 햇살이 찾아 준 밝은 웃음을 나누고 싶어 아아 아아 감탄사만 되풀이해도 행복합니다 마음이여 일어서라 꽃처럼 일어서라 기도처럼 외워보는 비 온 뒤의 고마운 날 나의 삶도 이젠 피아노소리 가득한 음악으로 일어서네요 -시집 중에서 ================================================================================== 천둥 번개까지 치며 밤새 폭우가 ..
2020.09.08 -
**[이 아침의 시] 연대-이영주(1974~)**
연대 ◆이영주(1974~)◆ 어둠이 쏟아지는 의자에 앉아 있다. 흙 속에 발을 넣었다. 따뜻한 이삭. 이삭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나는 망가진 마음들을 조립하느라 자라지 못하고 밑으로만 떨어지는 밀알. 옆에 앉아 있다. 어둠을 나누고 있다. 시집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문학과지성사) 中 ============================================================================== 밀알이 싹을 틔우고 자라난 이삭은 내 친구의 이름입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는 너와 나의 이름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어둠을 나눕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주는 것. 곁에서 믿음과 희망으로 함께 성장하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
2020.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