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이 식탁을 사각사각 갉아댄다
고요가 사과 깎는 손을 집적인다
창밖이 방을 들여다본다
가로등 불빛을 베란다가 베어 먹는다
밤마다 너는 내게 볼록한 허기
잘 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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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희='부산시인' 49호(2005년 겨울호)
대체로 낮에는 눈을 들어 세계나 사물을 안에서 밖을 향해 멀리 높이 보고,
밤에는 눈을 낮추어 세계나 사물을 밖에서 안으로 깊게 밀집시켜야 잘 볼 수
있는 것 같다. 출출한 허기가 잠을 덮는 늦은 밤,아름다운 꽃이 바람에
쓱 베인 뒤 비로소 열매가 된 사과는 날을 세운 과도에게 속살을 다 내어주고도
잘 여문 푸른 씨앗만은 끝까지 굳이 지킨다. 화자는 사물의 심연 속을 깊게
바라보고,미세한 서정을 감각적 발상으로 전이하여 밀도 높게 드러내고 있다.
임종성·시인 bus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