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음 -김영재-
연필을 날카롭게 깎지는 않아야겠다 끝이 너무 뾰쭉해서 글씨가 섬뜩하다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본다
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고 마음도 밖으로 나와 백지 위를 구른다 아이들 신나게 차는 공처럼 대굴거린다

일러스트/유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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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1948 전남 승주 출생 1974년 <현대시학>등단 <중앙시조대상>, <한국문협 작가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수상 시집 <화엄동백>, <다시 월산리에서>, <참나무는 내게 숯이 되라네> 등
연필심을 뾰족하게 깎아서 쓴 글씨를 섬뜩하게 여긴 화자는 연필심의 끝을 짧고 무디게 해 글씨를 쓴다.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고도 써본다. '마음'이라고 썼더니 속마음이 안심하고 바깥으로 나와 흰 종이 위를 대굴대굴 굴러다닌다. 천진한 아이가 찬 둥근 공처럼. 마치 연잎에 뒹굴뒹굴하는 빗방울처럼.
마음의 연필심을 뭉툭하게 깎아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헐겁게, 수수하게, 망설 이며, 내주면서, 홀가분하게, 사근사근하게, 펀펀하고 넓게, 눈물도 흘릴 줄 알면서 산다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을 눈보라처럼 깨진 유리 조각처럼 사용하지 않고 볕처럼 봄처럼 사용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맺힌 꽃망울처럼 뭉툭하게 사용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문태준 시인 Chosun.com/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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