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반찬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공광규 '얼굴반찬'(시집 '말똥 한 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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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출생 1960년 6월15일(충청남도 청양)
학력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데뷔
1986년 시 '저녁1'수상
2011년 제16회 현대불교문학상 시부문 2010년 제1회 김만중문학상 시부문 금상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참으로 따스하면서도 끔찍한 감수성이다. 홀로 먹는 밥이 "사료"라니!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가 뜸해진 오늘날 현실이 '우리 몸을 뇌 없는 존재로 사육하고 있구나' 하는 자각(自覺)에 이르게 한다. 인간적인 소통이 없는 상태에서의 '먹다'라는 행위는 동물과 다름없는 욕구해소의 수단일 뿐, 서로 간 유대감을 쌓고 정신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적 행위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는 곧 삶의 자양분과 건강성이 인간관계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말한다. 공광규 시인은 몸과 몸의 거리가 우리의 실존적 양상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대화의 소통 창구인 '얼굴반찬'은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재미라는 영양가'인 것이다. 가족의 얼굴은 웰빙식, 친척은 외식, 이웃은 간식, 우리 몸이 사물이 되지 않고 서로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은 몸 언어인 얼굴, 화사한 표정이 있기 때문이다. 정진경 시인 busan.com/201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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