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팝꽃 시간 -윤채영-
여남은 살 넘어가던 옥포면 다리목 발 빠른 트럭에게 길 먼저 내어주고 넉넉히 안으로 휘어진 논둑길 걷는다
길섶은 서툰데 마중 나온 유년 봄빛 자운영 꽃대 위로 꽃비 연신 내려앉고 명치 끝 툭, 치고 가는 굵은 바람 한 줄기
이팝꽃 휜 가지가 옛 기억 줄을 내려 아슴아슴 내려간다, 고치 같은 유년의 뜰 이적지 색 바래지 않은 종이배 몇 척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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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영=(1950~)대구교육대학교 졸업 2003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 <걸음을 멈춘지가 오래 되었다>
이팝꽃이 한창이다. 가로수로 가꾸는 도시도 있어 벚꽃 후의 거리가 한참 동안 또
환하다. 이팝꽃을 보고 있으면 왠지 흐뭇하다. 흰쌀밥을 그것도 고봉으로 받은 것
처럼 넉넉해진다. 조팝꽃은 잘고 푸석한 조밥 느낌의 안쓰러움이 있는데, 이팝꽃은
신수 훤히 핀 사람처럼 헌걸차게 듬직하다.
'마중 나온 유년 봄빛'도 그래서 더 '아슴아슴' 눈부셨을 거다. 꽃도 고봉이라 '휜 가지'
에 기대 돌아보는 '유년의 뜰'도 하얗게 빛났을 거다. 쌀밥 추억은 옛이야기가 됐지만,
기름기 자르르한 햅쌀밥의 보얗고 보드라운 식감은 여전히 일품이다. 그러니 이팝꽃
아래 서면 '이적지 색 바래지 않은 종이배 몇 척 같은' 시간도 얻나 보다. 이팝꽃길로
걸어간 봄날, 어느 섶을 또 아슴아슴 피우려나. 정수자 | 시조시인 Chosun.com/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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