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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막 -유재영-
칼을 든 사내의 날랜 손놀림 끝에 따그락! 모래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어린양의 턱관절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자작나무 널빤지 위에 놓인 채 식지 않은 한 덩이의 조문(弔問),
방금 전까지 묶여 있던 말뚝에는 아직 바둥거리는 생존이 뒷발에 힘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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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영=(1948∼) 충남 천안에서 출생. 1973년 《현대시학》과 《시조문학》에 시와 시조를 발표하며 시문단에 데뷔. 저서로는 시집으로 『‘한 방울의 피』 , 『지상의 중심이 되어』,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등과 시조집 『햇빛 시간』 등이 있음. 오늘의 시조문학상, 이호우 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도서출판 동학사 대표.
칼을 든 사내의 날랜 손놀림이 금세 살아 있던 어린양의 숨통을 끊는다. 이 잔혹한 살상에
는 한 점의 자비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뒷발에 온 힘을 모으고 “바둥거리는 (어린양의)
생존”을 그린 잔상은 이토록 생생하다. 살아남는 일은 타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산 것들은 살기 위해 반드시 외부에서 자양분을 가져와야 하니, 이 먹고 먹힘의 세계에서
남을 먹는 것은 비루하면서도 성스럽다. 그것이 비루한 것은 남의 생명 약탈이기 때문이고,
거룩한 것은 생명 부양 행위인 까닭이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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