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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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잡아-신현정**
무지개를 잡아 ◆신현정◆ 이제라도 무지개를 잡아야겠다는 것이야 무지개를 잡았다 하면 적어도 일곱 색깔 그대로 일곱 번은 친친 감아쥐고서 방금 세차게 지나간 소나기마저 비틀어 짜내고서는 그래놓고서는 지상에 던져놓는다는 것이야 어디로 보나 공작새로는 훌륭하겠지 사육하는 거야 모이를 뿌려주면서 그래서 정오만 되면 날개를 활짝 편다는 도도한 그걸 내가 쪼그리고 앉아서 공작새를 즐기겠다는 것이야. ============================================================================= 당신이 잡아놓았던 무지개, 어디서 자라고 있나요. 눈부신 일곱 빛깔 뽐내며 어디서 상서로운 열매를 쪼고 있나요. 촤르르~ 깃 한 번 펼치면 먹구름 걷혀 오십 일 장마가 그치고, 촤르..
2020.09.16 -
**[이해인 수녀의 詩편지](35) 비 온 뒤 어느 날**
비 온 뒤 어느 날 ◆이해인◆ 은행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비에 쓰러졌던 꽃나무들이 열심히 일어서며 살아갈 궁리를 합니다 흙의 향기 피어오르는 따뜻한 밭에서는 감자가 익어가는 소리 엄마는 부엌에서 간장을 달이시고 나는 쓰린 눈을 비비며 파를 다듬습니다 비 온 뒤의 햇살이 찾아 준 밝은 웃음을 나누고 싶어 아아 아아 감탄사만 되풀이해도 행복합니다 마음이여 일어서라 꽃처럼 일어서라 기도처럼 외워보는 비 온 뒤의 고마운 날 나의 삶도 이젠 피아노소리 가득한 음악으로 일어서네요 -시집 중에서 ================================================================================== 천둥 번개까지 치며 밤새 폭우가 ..
2020.09.08 -
**[이 아침의 시] 연대-이영주(1974~)**
연대 ◆이영주(1974~)◆ 어둠이 쏟아지는 의자에 앉아 있다. 흙 속에 발을 넣었다. 따뜻한 이삭. 이삭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나는 망가진 마음들을 조립하느라 자라지 못하고 밑으로만 떨어지는 밀알. 옆에 앉아 있다. 어둠을 나누고 있다. 시집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문학과지성사) 中 ============================================================================== 밀알이 싹을 틔우고 자라난 이삭은 내 친구의 이름입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는 너와 나의 이름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어둠을 나눕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주는 것. 곁에서 믿음과 희망으로 함께 성장하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
2020.09.02 -
**Ventures ? (나의 푸른 창공) My Blue Heaven**
하 늘 ◆정연복◆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 와락, 그리울 때 하늘을 바라보아요 늘 저만치 있는 푸른 하늘 치어다보아요 어쩌면 그 사람도 지금쯤 문득 나를 그리워하며 송이송이 눈물 너머 저 푸른 하늘 바라볼지 모르니까요. 온 세상 어디에나 똑같이 펼쳐지는 단 하나의 하늘 내가 태어나서 내가 죽는 날까지 한결같은 끝없이 너른 하늘 품안에서 그리움 둘 거뜬히 만날 수 있어요.
2020.08.29 -
**◆행복을 전하는 글◆**
◆행복을 전하는 글◆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불빛 하나를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불빛이 언제 환하게 빛날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는 그 불씨로 말미암아 언제나 밝은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어둠을 한자락 덮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어둠이 언제 걷힐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둠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그 어둠을 통해 빛을 발견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남모르는 눈물 한방울씩을 날마다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눈물이 언제 마를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눈물로말미암아 날마다 조금씩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꼭 용서받아야할 일 한가지씩 숨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용서가 어떤 것인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용서..
2020.08.28 -
**사는 게 참, 참말로 꽃 같아야-박제영**
사는 게 참, 참말로 꽃 같아야 ◆박제영◆ 선인장에 꽃이 피었구만 생색 좀 낸답시고 한 마디 하면 마누라가 하는 말이 있어야 선인장이 꽃을 피운 건 그것이 지금 죽을 지경이란 거유 살붙이래도 남겨둬야 하니까 죽기 살기로 꽃 피운 거유 아이고 아이고 고뿔 걸렸구만 이러다 죽겠다고 한 마디 하면 마누라가 하는 말이 있어야 엄살 좀 그만 피워유 꽃 피겠슈 그러다 꽃 피겠슈 봐야 사는 게 참, 참말로 꽃 같아야 ============================================================================ 대나무는 생의 절정에서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죽는다. 백 년 만에 꽃을 피우는 용설란도 가장 높고 화려한 꽃차례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려 꽃 폭죽을 터트리고 죽는다...
2020.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