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詩(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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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이원하(1989∼)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중략…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 근래에 발견한 시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시를 소개한다. 이 시에는 우리가 막 지나온 6월이 있고, ..
2020.07.11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49>우리는 매일매일**
우리는 매일매일 ―진은영(1970∼ )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 ================================================================== 글에는 서론, 본론, 결론이 있다. 논설문이 아닌 글이라고 해도 기승전결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시는 좀 다르다. 서두 없이 시작할 수 있고 결미 없이 끝날 수 있다. 뻔하게 기대 되는 다음 단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시는 ‘의..
2020.06.13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48>씬냉이꽃**
씬냉이꽃 ―김달진(1907∼1989) 사람들 모두 산으로 바다로 신록철 놀이 간다 야단들인데 나는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의 조그만 씬냉이꽃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꽃이 피고 나비 날은다. ================================================================= 대학교에서는 아직도 화상 강의를 하고 있다. 나는 퍽 외롭다. 학생들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쉬운 탓에 물어보았더니, 결론적으로 나만 아쉬운 것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온라인 수업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공감대가 빤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워낙 다양한 욕망과 관심사를 지닌 친구들이다. 혼자서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것, 온라인으로 그것을 찾고 나누는 것. 새..
2020.06.07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47>괜찮아**
] 괜찮아 ―한강(1970∼ )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중략)…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맨부커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은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가 이름이 워낙 유명 하여 소설가인 줄로만 알고 계신 분들에게 한..
2020.06.01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46>길**
길 ―정희성(1945∼)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사람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 ..
2020.05.26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45>정말 그럴 때가**
정말 그럴 때가 ―이어령(1934∼) 정말 그럴 때가 있습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울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봉투에 적은 ..
2020.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