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의모음/◈행복한― 詩(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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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023>김병호-세상 끝의 봄
세상 끝의 봄 ◆김병호◆ 수도원 뒤뜰에서 견습 수녀가 비질을 한다 목련나무 한 그루 툭, 툭, 시시한 농담을 던진다 꽃잎은 금세 멍이 들고 수녀는 떨어진 얼굴을 지운다 샛길 하나 없이 봄이 진다 이편에서 살아보기도 전에 늙어버린, 꽃이 다 그늘인 시절 밤새 혼자 싼 보따리처럼 깡마..
2015.12.20 -
**[행복한 시]<022>최영미-월동준비**
월동준비 ◆최영미◆ 그림자를 만들지 못하는 도시의 불빛.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인간이 지겨우면서 그리운 밤. 애인을 잡지 못한 늙은 처녀들이 미장원에 앉아 머리를 태운다 지독한 약품냄새를 맡으며 점화되지 못한 욕망. 올해도 그냥 지나가는구나 내 머리에 손댄 남자는 없었어. ..
2015.12.14 -
**[행복한 시]<020>미겔 에르난데스-그대가 없다면**
Meditation - Phil Coulter 그대가 없다면 ◆미겔 에르난데스◆ 그대의 눈이 없다면 내 눈은 외로운 두 개의 개미집일 따름입니다. 그대의 손이 없다면 내 손은 고약한 가시다발일 뿐입니다. 달콤한 종소리로 나를 가득 채우는 그대의 붉은 입술이 없다면 내 입술도 없습니다. 그대가 없다면 내 ..
2015.12.10 -
**[행복한 시]<021>이진명-모래밭에서**
모래밭에서 ◆이진명◆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갑자기 알아차리게 된 이즈음 외롭고 슬프고 어두웠다 나는 헌것이 되었구나 찢어지고 더러워졌구나 부끄러움과 초라함의 나날 모래밭에 나와 앉아 모래장난을 했다 손가락으로 모래를 뿌리며 흘러내리게 했다 쓰라림 수그러들지 않..
2015.12.10 -
**[행복한 시]<018>김형영-모기**
모 기 -김형영- 모기들은 날면서 소리를 친다 모기들은 온몸으로 소리를 친다 여름밤 내내 저기, 위험한 짐승들 사이에서 모기들은 끝없이 소리를 친다 모기들은 살기 위해 소리를 친다 어둠을 헤매며 더러는 맞아 죽고 더러는 피하면서 모기들은 죽으면서도 소리를 친다 죽음은 곧 사는 ..
2015.11.22 -
**[행복한 시]<019>전동균-여행자**
여행자 ◆전동균◆ 일찍이 그는 게으른 거지였다 한 잔의 술과 따뜻한 잠자리를 위하여 도둑질을 일삼았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에서 그리고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왕으로 법을 구하는 탁발승으로 몸을 바꾸어 태어나기도 하였다 하늘의 별을 보고 땅과 사람의 운명을 점친 적도 있었다 ..
201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