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모여 서 있는 흰머리갈대들은
헐렁해진 제 삶을 허공 깊이 밀어 올리는지,
저희끼리 서걱서걱 온몸을 비비댄다
가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옷자락을 부여잡다가
놓아 버리는 나도
갈대들과 어우러져 서걱거린다
강물에 실려 아래로, 아래로 떠내려간다
버리고 비워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그와는 정반대로
차오르는 허접생각들, 한참이나 허공에 떠돌던
넋두리들도 가까스로 제 길로 접어드는지,
새들이 어스름 곳곳에 부드럽고 촘촘한
노래의 비단자락을 펼쳐줘서 그런건지,
저녁 강은 그지없이 너그러워진다
갈대들과 어우러져 서걱거리는 이 한때가
넉넉하고 그윽하게 나를 감싸 안아 올려 준다
-'저녁 강'(시집 '침묵의 푸른 이랑'·민음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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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太洙(이태수)=1947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림자의 그늘』,『회화나무 그늘』 등이 있음.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 수상. 매일신문 논설주간 역임.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에서 물금으로 내려올 때 우측 창가에 앉게 되는 날은
횡재를 하게 되는 날이다. 갯버들 늘어진 낙동강변의 경치가 그저 그만이었다.
거기다 군데군데 하얀 모래톱이 펼쳐지고 도요새라도 몇 마리 서성거릴라치면 한 폭의
수채화는 완성된다. 이 아름답던 풍광은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4대강 사업이
가져 온 비참한 결과다.
시인은 지금 낙동강변 어느 위치쯤에서 저물어가는 저녁 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저녁 어스름에 낮의 물상들이 하나하나 검은 외투를 껴입고, 낮 동안 들떠 있던
마음들이 들판처럼 낮게 내려와 깔리는데, 어머니 강이 그 모든 것을 껴안아 따뜻이
품어준다. 저녁 강에 기댄 시인도 한없는 강의 너그러운 품에 안겨 갈대들과 몸을
섞으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보는 것이다.
이해웅 시인
busan.com-2013-10-04
이해웅 시인님
※10월부터 연재되는 '맛있는 시'는 물의 이미지를 노래한 시를 소개한다.
필자 이해웅 시인은 1973년 시집 '壁(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부산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작가회의 고문이며, 부산교대
명예교수로 있다. 시집 '반성 없는 시' '사하라는 피지 않는다'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