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8 -정진명-
아내가 줄넘기를 한다. 스치는 발바닥으로 줄을 넘기며 사라진 줄이 만드는 둥근 공간 속에서 활짝 웃는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박자를 겨누다가 잠시 열린 줄의 틈으로 딸아이가 뛰어든다. 엄마의 방 속에서 엄마와 함께 뛰는 딸아이의 머리채가 구름 높이 출렁인다. 환한 하늘이 이마로 내려온다. 엄마와 마주했다, 뒤로 돌아섰다, 방향을 바꾸며 솟을 때마다 줄 안의 공간도 덩달아 환해진다. 아내와 딸이 하는 한 박자 줄넘기.
박자가 드러낸 줄 틈으로 아이가 재빨리 뛰쳐나오고 통통 튀는 방 속에 아내 혼자 남아있다. 아들아이도 박자로 줄의 틈을 열고 들어간다. 등이 굽은 할머니도 들어갔다 나온다. 줄과 줄 사이의 엇박자가 온 가족을 토하고 뱉는 줄넘기
나도 그 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아내의 숨결이 얼굴에 닿는다. 오랜만에 맞춰보는 경쾌한 박자에 몸속 깊이 잠든 율동이 파도처럼 인다. 아내의 줄이 만든 작은 방 속에서 온 세상이 함께 뛴다.
아내의 방에서 빠져나간 아이들이 아내한테 배운 박자로 저만의 줄넘기를 한다. 하하호호 웃으며 작은 방의 빛 송이를 끌고 제 갈 길로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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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1960∼ )충남 아산 출생 1987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시 <아메리카> 외 9편으로 추천 시집으로, <완전한 사랑>, <노자의 지팡이>, <용설>, <정신의 뼈>외 다수. 저서로, <우리 침뜸 이야기>, <한국의 활쏘기>, <활쏘기의 나침반>, <이야기 활 풍속사> 외 다수.
이 시를 읽으니 골목이 떠나가라 목청 높이고 뛰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꼬마야, 꼬마야, 줄을 넘어라!/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꼬마야, 꼬마야, 땅을 짚어라!/ 꼬마야, 꼬마야, 만세를 불러라!/꼬마야, 꼬마야, 잘∼ 가거라!’ ‘꼬마야 꼬마야’는 술래 두 사람이 양끝을 잡고 돌리는 줄을 넘는 놀이다. 줄넘기 줄은 기특하다. 아니, 인간은 기특하다. 돌돌 말면 한 줌밖에 안 되는 줄 하나로 얼마나 많은 놀이와 운동을 할 줄 아는지!
정진명 시집 ‘줄넘기와 비행접시’에는 줄넘기에 삶의 여러 양태와 속성을 겹쳐 보는 줄넘기 시 스물일곱 수가 실려 있다. ‘줄넘기 8’의 줄넘기는 단둘이 하는 줄넘기다. 한 사람이 돌리는 줄이 만드는 공간에는 아주 친한 사람만 함께 할 수 있다. ‘아내가 줄넘기를 한다.’ 기실 가정이란 저절로 화목하고 견고한 게 아니다.
줄을 밟으면 죽는 줄넘기 놀이처럼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다. 화자의 아내는 건강하고 밝은 성품에 센스 있는 여인이다. 이런 이가 가정의 중심이니 얼마나 든든 하고 고마운가. 아내가 팔뚝 힘 다해 부지런히 줄을 돌리고 힘차게 뛰며 줄넘기를 한다. 그 줄넘기의 ‘둥근 공간’에 가족들이 하나하나 깃들인다. 넷째 연의 부부 줄넘기가 경쾌하게 에로틱하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293> joins.com/201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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