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 시간
◆박은정◆
지휘자의 붉은 반점이 짙어졌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겠지
우리는 파트를 나누어 노래를 부른다
소프라노와 알토가 불협하고
테너와 베이스가 제 목청에 넘어갔다
강당의 커튼이 휘날린다
신의 이름을 부를수록
세기말이 즐거웠던 사제처럼
우리는 간절하게 후렴구를 반복했다
지휘자의 얼굴이 신의 얼굴을 닮아간다
한줄기 빛 속에서
구체적이며 입체적으로 신의 얼굴을 본 적 있니?
악보를 넘기는 손들이 바빠지고 목청이 주춤거렸다
그럴수록 화음은 웅장하게 퍼졌다
지휘자의 슈트 자락이 펄럭인다
저 새들은 언제부터 울고 있던 거지?
저, 저 백치들은?
정오가 되자 길고 누런 잎들이 아래로 늘어졌다
입을 벌리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높은 곳으로 낮과 밤이 없는 곳으로
창세기의 새가 날아오른다
천상의 노래를 불러야 해 옆구리에서
투명한 날개가 돋아나도록 지휘자의 동공이 커지자
하품을 하던 여학생의 콧등 위로 파리가 앉았다
일곱 번째 날이 지나고 있었다
최초의 고공비행은 실패했다
----------------------------------------------------------------
▶박은정=(1975∼ )부산에서 출생.
창원대학교 음악과 졸업.
2011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문학동네)
성가대의 기량을 겨루는 전국 교회 대항 합창대회라도 앞두고 있었던 걸까. 언제 시작했는
지 몰라도 연습시간이 꽤 길었나 보다. 아침부터 따가운 볕이 한낮으로 치달아가는 한여름
의 일요일, ‘지휘자의 붉은 반점이 짙어졌단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프라노와 알토는 불협
하고 테너와 베이스가 제 목청에 넘어가니’, 속이 터지는 것이다.
화음이여, 화음이여, 성스러운 화음이여! 화음에 대한 간절함이라는 ‘한 줄기 빛 속에서’ ‘지
휘자의 얼굴이 신의 얼굴을 닮아간다’. 신통치 않은 성가대지만 성심으로 그 지휘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간절하게 후렴구를 반복했단다.
’ 눈앞의 신, 지휘자를 만족시키고 싶은 일념으로. 그런데 신이란 만족을 모르는 존재 아가?
신을 만족시키기에 인간은 너무도 미미한 존재 아닌가? ‘일곱 번째 날이 지나고 있었다’니
그 일요일이 저물도록 맹훈련을 받았나 보다.
온종일 ‘후렴구’를 반복하니 이제 ‘입만 벌리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지경. ‘천상의 노래를 불
러야 해 옆구리에서 투명한 날개가 돋아나도록’! ‘지휘자의 동공이 커지자’ 지루하고 피곤해
진 여학생의 콧등에 파리가 앉았단다. 천사의 날개와 파리 날개를 잇다니 이리 불경스러울
수가!
지휘를 따르지 못하는, 그런즉 합창에 맞지 않는 존재들, 새들과 백치와 소년소녀, 그리고
시인. 시인이 될 소녀의 성가대 연습 시간이 나른하고 발칙하게 그려졌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432>
dongA.com/201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