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럭바위
◆김진길◆
배추꼬랑이 널브러진 서릿발 허연 아침
밭머리 밤새 지킨 낡은 의자를 만났다
한 세월 무게를 견딘 중심조차 휘청이는.
누군가 저기 앉아 씨 뿌리고 두엄 치고
새끼줄 감싸주며 속이 차길 빌었겠지
울 엄마 수유를 하던 뙈기밭 너럭바위처럼.
열여덟 시집살이 설운 눈물 뚝뚝 받아낸
배추밭 그 이랑에 할머니를 모셔놓고
해마다 씨를 뿌리고 두엄 치신 어머니.
사람이 빠져나가면 그림자도 따라가는데
할머니는 엄마 밭에 바위로 앉으셔서
속알이 꽉 찬 배추를 다섯이나 주셨다.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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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길=(1969~ ) 강원도 영월출생
2003년 <시조문학>과 2006년<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집시, 은하를 걷다>
제1회 올해의단수시조대상 수상
현재 육군본부 정훈공보실 근무
언제 봐도 넉넉한 너럭바위. 그 품에 사람들을 앉히면 밥도 술도 웃음도 두레반 같은 맛을
냈다. 지나는 길손과 바람과 햇볕들 다 들여 앉히던 바위. 그 모습이 똑 마흔쯤은 훌쩍 넘긴
어머니며 속 꽉 찬 가을 배추같이 푼푼하다.
김장이 겨울 농사이던 시절엔 배추가 집집이 산더미처럼 쌓이곤 했다. 그것을 절이고 다듬
고 끓여서 식구의 밥상을 차려낸 어머니들. '속알이 꽉' 차도록 '새끼줄' 동이는 뒷모습과 배
추는 어쩜 그리도 닮았던지! 그 곁을 지날 때면 엉덩이가 덩달아 둥글어지는 느낌이었다.
배춧국 냄새가 저녁 길을 구수하게 당기는 '서릿발'도 허연 나날….
정수자 시조시인[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