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에도 귀뚜리가 우는 것일까.
봄밤, 그러나 우리 집 부엌에선
귀뚜리처럼 우는 벌레가 있다.
너무 일찍 왔거나 너무 늦게 왔거나
아무튼 제철은 아닌데도 스스럼없이
목청껏 우는 벌레.
생명은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
그저 열심히 열심히 울고
또 열심히 열심히 사는 당당한 긍지,
아아 하늘 같다.
하늘의 뜻이다.
봄밤 자정에 하늘까지 울린다.
귀를 기울여라.
태고의 원시림을 마구 흔드는
메아리 쩡쩡,
메아리 쩡쩡
서울 도심의 숲 솟은 고층가
그것은 원시에서 현대까지를
열심히 당당하게 혼자서도 운다.
목청껏 하늘의 뜻을
아아 하늘만큼 크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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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1933∼2005) 진주 출생 6 ·25 전쟁이 끝난 뒤 신문 기자로
활동 제1회 영남예술제(지금의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장원,
서정주 시인과 모윤숙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 첫 시집 『적막강산』
(1963)을 시작으로 『돌베개의 시』(1971), 『풍선심장』(1981), 『알시
몬의 배』(1995), 『절벽』(1998), 『존재하지 않는 나무』(2000) 등과
평론집 『감성의 논리』(1978), 『한국문학의 반성』(1980) 등 300여편
‘봄밤의 귀뚜리’는 뭔가 어색한 제목이다. 기왕 어색한 김에, 겨울이 되어 ‘봄밤의 귀뚜리’를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시의 핵심은 봄밤에도, 귀뚜리에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귀뚜라미는 예쁘지 않다. 특이하지도 귀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몸집에 비해 목청이 참 크고
좋다.
그래서인지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빚진 노래나 시가 제법 많이 있다. 심지어 이 작품의 시인
은 당장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다. 꿇을 만도 하다. 생명으로서의 신호를 저렇게도
잘 뽑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시인은 살아있음 자체를 힘차게 주장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구나, 감탄한다. 딱히 이유가 있
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가 바로 긍지라는 말이다. 그런데 당연한 이 말이 요즘
들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 시에 의하면 살아있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갖는다. 하물며 귀뚜라미도 생명의 긍지를 지
지하며 운다는데 반대로 현대인들은 살 이유를 찾아야만 살 수 있다. 봄밤의 귀뚜리만 당당
할까. 겨울에든 여름에든, 생명은 다 존엄하다. 오늘날 하늘의 뜻이 지상의 뜻에 지지 말기
를 바라며 이 시를 음미할 수 있다.
나민애 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dongA.com/201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