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백만원
◈박형준◈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젠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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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1966∼ ) 전북 정읍 출생.
1987년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구(家具)의 힘」당선
시집『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등
이 시는 위대한 유산에 대한 것이다. 그 유산의 금액은 칠백만 원이다. 위대하다고 말하기
에는 조금 적은 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돈은 시골 어머니가 천 원 한 장, 만 원 한 장, 이
렇게 조금씩 모아서 만든 돈이었다.
푼돈이 칠백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얼마나 오래 애쓰셨을까. 어머니는 지폐 한 장을 보태면
서 아들을 그리워했고, 또 한 장을 보태면서 아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칠백만 원은 칠백 번
의 사랑이고 걱정이다. 그러니 결코 적은 돈이라고 할 수 없다.
어머니는 아들의 장가 밑천으로 그 돈을 모았는데, 불행하게도 아들은 그 돈을 찾을 수 없었
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진짜 중요한 사실은 어머니의 일생에서 자식이 마치 신과 같았다는
것이다. 시인은 잃어버린 돈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울고 있다.
울고 있는 시인은 가엾지 않다. 그는 가여운 사람이 아니라 아주 큰 사랑의 곳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가 평생을 바쳐 귀하게 사랑했다는 사실이 ‘칠백만 원’으로 남아 있
다.만약 세상이 아들에게 너그럽지 않은 날이 온다면 그는 어머니의 칠백만 원을 생각할 것
이다. 세상이 춥고 배고파도 역시 어머니의 칠백만 원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칠백만 원은 칠억보다, 칠십억보다도 위대하다. 잃어버린 칠백만 원은
시인의 평생을 먹여 살릴 사랑의 곳간이 되어 줄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과 평생을 구원하
다니, 이렇게 위대한 사랑이 또 있을까.
나민애 문학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dongA.com/2016-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