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 밥상 ―정일근(1958∼)
더러 신문지 깔고 밥 먹을 때가 있는데요 어머니, 우리 어머니 꼭 밥상 펴라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신문지가 무슨 밥상이냐며 궁시렁궁시렁하는데요 신문질 신문지로 깔면 신문지 깔고 밥 먹고요 신문질 밥상으로 펴면 밥상 차려 밥 먹는다고요
따뜻한 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요 따뜻한 마음은 세상까지 따뜻하게 한다고요 어머니 또 한 말씀 가르쳐 주시는데요
해방 후 소학교 2학년이 최종 학력이신 어머니, 우리 어머니 말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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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상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확진자 수부터 확인한다. 나갈 때는 마스크를 챙기고 사람을 만날 때는 조심한다. 3월 초에 있어야 할 평소 일정들이 사라졌다. 입학식도 없고 새 학기도 없고 나들이도 없다.
최대한 집에 머물다 보니 답답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활동은 제약되고 밥은 챙겨 먹으니 찌뿌둥하고 살만 찐다. 주부들은 가족들 끼니 챙기기가 고되고 아이들도 집에만 있으니 좋을 리 없다. ‘밥때’는 왜 이리 자주 찾아오는지. 다복한 밥상 위에도 핀잔의 말이 오가기 쉽다. 짜증이 폭발할 것 같은 일상이 넘쳐난다.
그래서 정일근 시인의 이 작품을 소개한다. 여기에는 아주 소박한 밥상이 등장한다. 신문지를 펴고 그 위에 차린 밥상이 화려할 리 없다. 그런데 밥상을 대하는 어머니의 말씀이 아주 재미있다. 어머니는 신문지를 깔 때 신문지 펴라고 하지 않고 밥상을 펴라고 말씀하신다. 그게 그거 같지만 사실 다르다. 정성이 있으면 흔한 신문지도 따뜻한 밥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어디 신문지 밥상뿐이겠는가. 시인의 어머니는 신문만 아니라 세상 만물에도 다정할 것이다. 따뜻한 밥그릇보다 따뜻한 마음과 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은 허무하다고 하지만, 한 번밖에 안 오기 때문에 소중하기도 하다. 지루한 일상도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고 한 번 가면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쳇바퀴 같은 일상도 귀하게 대해 줄 일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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