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허물을 벗는,
점액질의 시간을 빠져나오는,
서서히 몸 하나를 버리고,
몸 하나를 얻는,
살갖이 찢어지고
벗겨지는 순간,
그 날개에 번갯불의 섬광이 새겨지고,
개망초의 꽃무늬가 내려앉고,
생살 긁히듯 뜯기듯,
끈끈하고 미끄럽게,
몸이 몸을 뚫고 나와,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를 살려 내는,
발소리도 죽이고 숨소리도 죽이는,
여기에 고요히 내 숨결을 얹어 보는,
난생처음 두 눈 뜨고,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시집 '파묻힌 얼굴'에서-
![](https://t1.daumcdn.net/cfile/blog/1128E0444FCFD2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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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국=1956년 경북 영양 출생.
198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
'내가 밀어낸 물결', '멀리서 오는 것들' 등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9207C444FCFD2341A)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온몸에 바르고
뒹굴고 미끌어지고 몸과 세포가 절로 웃고
진흙이 나를 어루만지고, 만신창이가 되고 진흙에 뒹굴고,
이 야성풀밭 같은 진흙은 말랑말랑한 나일까,
뾰족뾰족한 나일까. 아직 이름이 생겨나지 않고
진흙은 새가 깨어 나오려는 알이고 지금 여기의 나이고 세계이고,
매미가 허물을 벗는 순간이고, 한 세계가 만들어지는,
한 우주가 만들어지고, 우리들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지 않나.
이 멀고 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자아와 존재를 찾아가는 시인의 여정은 언제 끝이 나려나.
땅 속에서 7년을 유충으로 지내고 지상의 시간을 막 건너오는,
매미가 허물을 벗는 환희의 신비는 또 새로운 시작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떠올린다.
새는 알에서 깨어난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삭스!
김예강·시인
국제신문2012-06-07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