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허물을 벗는,
점액질의 시간을 빠져나오는,
서서히 몸 하나를 버리고,
몸 하나를 얻는,
살갖이 찢어지고
벗겨지는 순간,
그 날개에 번갯불의 섬광이 새겨지고,
개망초의 꽃무늬가 내려앉고,
생살 긁히듯 뜯기듯,
끈끈하고 미끄럽게,
몸이 몸을 뚫고 나와,
몸 하나를 지우고 몸 하나를 살려 내는,
발소리도 죽이고 숨소리도 죽이는,
여기에 고요히 내 숨결을 얹어 보는,
난생처음 두 눈 뜨고,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시집 '파묻힌 얼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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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국=1956년 경북 영양 출생.
198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
'내가 밀어낸 물결', '멀리서 오는 것들' 등이 있다.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온몸에 바르고
뒹굴고 미끌어지고 몸과 세포가 절로 웃고
진흙이 나를 어루만지고, 만신창이가 되고 진흙에 뒹굴고,
이 야성풀밭 같은 진흙은 말랑말랑한 나일까,
뾰족뾰족한 나일까. 아직 이름이 생겨나지 않고
진흙은 새가 깨어 나오려는 알이고 지금 여기의 나이고 세계이고,
매미가 허물을 벗는 순간이고, 한 세계가 만들어지는,
한 우주가 만들어지고, 우리들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지 않나.
이 멀고 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자아와 존재를 찾아가는 시인의 여정은 언제 끝이 나려나.
땅 속에서 7년을 유충으로 지내고 지상의 시간을 막 건너오는,
매미가 허물을 벗는 환희의 신비는 또 새로운 시작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떠올린다.
새는 알에서 깨어난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삭스!
김예강·시인
국제신문2012-06-07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