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귀퉁이에
꽃들이 빨갛게 피어오르고 있다
살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는 재개발구역
폐가가 보일러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함석처마에서 녹물 뚝뚝 떨어지는
낡아빠진 보일러가
방금 설치한 새것처럼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 방울의 기름도 없지만
종일토록 불꽃이 점화되어 있는
고성능보일러의 연료는
봄비와 햇살이다
-시집 '사소한, 아주 사소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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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무현=1963년 경북 성주 출생.
2004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홍어' 등.
개발이란 참 좋은 말이다. 재개발 역시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런데 개발과 재개발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개발이 새로운 계획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인 반면 재개발이란 개발했던 지역이 낡았거나
필요에 의해 다시 고쳐 발전시키려는 것일 게다. 그런데 계획이란
어디까지나 계획이다. 그에 따른 보상금이나 투자금, 주민의 여론 등을
감안해서 결정해야 한다. 폐가가 되어버린 재개발구역. 그런 와중에
양지쪽에 핀 꽃은 고성능보일러로 돌아가는데 봄비와 햇살이 그 연료로
무공해가 아닌가.
이상개·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