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이 와도 줄 시가 없을 때
은밀히 감춰둔 비밀이 없는 것처럼
시인은 가난하다
쌀독이 비어 끼니를 거른 적이 있는가
품은 시 몇 편도 없이
이 불황의 겨울을 넘자니
가슴이 시리다
하나 굶주림도 재산이다
배낭 가득 이면지를 넣고 떠나자
시 쓰기 좋은 곳을 알고 있다.
-시집 '풍마 룽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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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1954년 경기 고양 출생.
시집 '공한지' '흔들리는 도시에 밤이 내리고' '등을 돌리면
그리운 날들' '왕촌일기' '울기 좋은 곳을 안다' 등.
제1회 시와시 작품상 수상.
우리에게는 가난이 재산이다. 빈 쌀독처럼 우리가 가난해졌을 때, 비로소 시가 된다.
우리의 가슴이 빈 쌀독처럼 황량해졌을 때 시가 온다.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비우고
위장을 비웠을 때 시가 온다. 시인이여 우리 좀 가난해 보자. 모든 잎들을 내려놓고
찬바람에 맞서는 겨울나무들처럼 우리도 가슴을 깨끗이 비우고 찬바람 앞에 서보자.
시여, 시인이여.
성선경·시인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