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
그래도 그래도
골목 저편 오는 식구들을 기다리며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끓는 물 넘쳐흘러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
-최영철,'시평' 200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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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1956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
1984년 《지평》 3집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단
시집으로 『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 『일광욕하는 가구』,
야성은 빛나다』, 『홀로 가는 맹인 악사』, 『가족 사진』,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
그림자 호수』, 『찔러본다』 등이 있음 제2회 백석문학상 수상.
한 지붕 아래 사는 남편과 아내는 마루와 섬돌의 관계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남편이 잘 빚은 '그릇'이라면,아내는 '간이 잘 맞는 음식'이라는 비유는
자연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연신 창밖을 내다보는 자애로운 아내와 처마에 걸린 불빛에
이끌려 설레는 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르는 남편이 만나 조성하는 정겨운 가정의
풍경은 아주 밝고 따뜻하다.
아내가 되어 즐겁게 쑥국을 끓이는 남편과 남편이 되어 고맙게 쑥국을 받아먹는
아내,이러한 부부 사이는 멀리 떨어져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서로 처지를 바꾸어
보면 남자는 아내이면서 믿음직한 남편이고,여자는 남편이면서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