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코를 닮은 주둥이를
묶을 수 있었다면 내 청춘의 푸른 잠이
좀 더 깊고 포근했을 것도 같았지
한통속인 우리라는 유년은 지겨웠어
쑥쑥 자라는 빽빽한 콩나물시루 안은 싫어
선인장 가시가 돋아나는 내 사춘기는
꽃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막의 계절이지
허름한 아궁이 불이 들지 않는 방에 홀로
담요를 감싼 주전자와 웅크린 오래된 겨울밤
주전자가 기운 잠에는 별이 둥둥 떠다녔지
불룩한 배는 아늑했지만 주둥이는 불안했어
투사처럼 날선 잠으로 꽁꽁 각을 세우던 날들
정점의 고독을 향할 때 심장이 쩍, 갈라지는
초롱초롱한 별들을 내어 걸고 싶었다
다시 봄볕에, 이미 커버린 나마저 너무 뚱뚱해
이제 안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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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곳=2005년 '문학도시' 등단.
시집 '숲으로 가는 길', 또따또가 문화공간 집필 작가.
'푸른별', '시무덤' 동인.
〈시작 노트〉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풍경은 겨울을 포근하게 한다. 그러나
봄이 거듭될수록 풍요로워지는 삶은 얼마나 무딘 심장을 키우게 되는지,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오늘을 살지는 말자. 사춘기와 함께 지나간 혹한의 계절, 성장은
혹독한 추위를 견딘 후에 맞이하는 봄과 또다시 오는 계절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