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에게
-문정희-
자꾸 뒤로 물러서는 파도를 보면
나도 좀 뒤로 물러서야 할 것 같다
뒤로 뒤로 물러서서
물의 발자국을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어깨를 두드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진실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나에게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앞으로만 내닫는 바퀴에게
막무가내 뭉개어진 저 길가의 꽃들을
오롯이 한번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일러스트/유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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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1947~ )=전남 보성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
1969년에 《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현대문학상을 수상 시집으로 《문정희 시집》, 《새떼》,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수필집 《지상에 머무는 동안》 등을 출간했다
물러서는 일은 무엇인가. 있던 자리에서 뒤나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는 일은 무엇인가.
나서지 않고 내놓는다는 것 아닌가.
물러서면 해변에 어지럽게 난 발자국이 보일 게다. 바다가 통째로 제대로 보일 게다.
문정희 시인은 시 '짐승 바다'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내 안에서 일어서고 / 내 안에서
무너지는 / 천둥의 깊이'라고 썼다. 물러서면 물결의 높이와 수심(水深)이 보일 게다.
하나의 바다인 나의 충동과 강렬한 움직임이 보일 게다.
앞으로만 구르는 바퀴에는 물러섬이 없다. 물러섬을 모르는 이는 오로지 매섭고 사납
기만 하다. 헤드라이트를 켠 그의 눈에 길가에 핀, 키 작고 연약한 꽃이 보일 리 없다.
오토바이 바퀴처럼 다만 질주(疾走)하는 이는 금속성 굉음처럼 섬뜩하다.
문태준.시인
Chosun.com/2014.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