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뜯으면서
-김규태-
남포동 선창가에 돌고래 쇼는 없지만 귀신고래들이 가끔 나타난다
난전에 앉아 괭이 갈매기들, 유연한 선회를 보면서 어느 부위에 붙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 채 고래의 살점을 뜯고 잔을 비운다
젓갈에 묻은 고래는 우리에게 어떤 저항도 없다 오늘 바다는 고래를 담았다가 비운 접시처럼 허전하다
-김규태,'신생' 200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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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태=출생1934년 3월 26일 (대구광역시) 학력서울대학교 불문학 학사 데뷔1957년 사상계에 시 '아직은 잊지 않을 것이다' 수상2004년 설송문학상 대상 1977년 부산시문화상
처음에 서늘한 선창가 풍경의 주변에 머무르던 화자의 시선은,뒤로 내려갈수록 허망의 언사를 빌려 넓고 깊은 생의 내포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거친 파도 속에 요동치는 섬이며 숲이던 고래는 폐허의 몸이 되어 시장의 먹이로 전이된다.
그래서 난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유연하게 높이,멀리 나는 갈매기들을 보면서 말 없는 숱한 대화로 고래의 살점을 뜯으며 잔을 주고받는다. 고래를 담았다가
비운 탓인지,창밖의 바다는 금이 쩍 간 채 길가에 나둥그러진 빈 접시와 다르지 않다. 임종성·시인 / 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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