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름 -박규리- 제 얼굴 제가 만든다는 말 무엇인가 했는데 지울 수 없는 사연 건너뛰지 못한 세월 골골이 주름으로 잡혀 내 얼굴이 되었다
웃음 하나에 주름 하나 서러움 하나에 주름 하나 이렇듯 살가운 사정과 스산한 과거 내게도 있었는가 누군가에게 몸 버리고 떠돌던 흔적과 양미간 깊이 팬 상처
그러나 생각하면, 내 주름은 또다른 누구의 주름이 아니었으리 나 때문에 눈물 흘리던 사람이여
나 때문에 섧게 섧게 속 태우던 사람이여 내 철없는 욕심과 부질없는 사랑이 상처 한 줄 그을 줄 차마 어찌 알았으랴
언제부터였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란 주름과 주름이 섞이는 일이라는 걸 짐작한 뒤부터
-박규리 '주름' 중에서(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

----------------------------------------------------------

▶박규리=1960년 서울에서 출생. 1995년 《민족예술》에 〈가구를 옮기다가〉 외4편 추천으로 작품활동 시작 . 시집으로 『이 환장할 봄날에』(창작과비평사, 2004)가 있음.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가 행복해진다. 눈가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잎맥처럼 뻗어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그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이 있어서 웃을 수만은 없는 것.
박규리 시인의 말대로 때로는 '철없는 욕심과 부질없는 사랑'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골 깊은 주름을 남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주름과 주름이 섞이는 일'이라니! 참으로 인간관계의 속성과 마음의 파동을 잘 간파한 말이다.
주름을 몸의 노화로 보지 않고, 감각과 감성이 꿈틀거리는 실존의 양태로 본다. 주름이 많아 애타는 여성들이여! 이런데도 우리가 함께 만든 시간을 성형하고 싶은가? 얼굴에서 타인들의 주름이 환하게 필 때, 당신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정진경 시인 busan.com/2014-05-16



http://blog.daum.net/kdm2141/4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