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이름을 밝힌 적이 없는 벌레들이
죽은 듯이 알을 깨고 나와
귓속에서 눈 속으로
눈 속에서 다시 더러운 내 눈을 들여다본다]
더러운 기타 소리를 들으면서
저게 왜 더러운지 더러울 수밖에 없는지
내 눈을 생각한다
내 몸에서도 가장 더러운 곳
한때 사랑을 품었던 내 갈비뼈 부근을
건드려놓고 가서가 아니다
반성하고 있는 내 몸이
지금 반성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내 몸이
이제까지의 내 몸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언 '이명(耳鳴)' 중에서-
(시집 '숨쉬는 무덤'·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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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언=1973년 부산에서 출생
1998년 <시와사상>에 <해바라기> 외 6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숨쉬는 무덤」과 「거인」이 있음.
사람은 세상을 오감(五感)으로 체험한다.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 등 등은 따스한
마음이 되어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이것이 불신으로 감각될 때는 스스로를 억압
하는 요소가 된다.
김언 시인은 자신의 몸으로 감각되는 모든 것을 불신한다. 강렬하게 사랑을 품었던
심장은 가장 더러운 곳, 세상 사람들이 미(美)라고 규정했던 아름다운 선율 '기타 소리'
는 추(醜)로 지각된다.
진실과 허위를 판별하지 못하는 몸의 감각들은 시인에게 이명이다. 이명은 억압된
몸이 내지르는 비명이다. 해소되지 않은 내면적 고통이 몸으로 전이되어 생기는 현상,
견디지 못한 몸이 처절하게 내지르는 몸의 언어이다.
세상 한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있는 시인은 무인도에 거주하며, 세상에 대한 면역력을
이미 잃은 상태이다. 그동안 자신이 믿었던 감각적 진실들은 수많은 '벌레들'로 산란
되어 고통을 증식하는 실체가 되고 있다. 귓속에서 파닥거리는 날갯짓 소리, 어쩌면
이명은 사랑이 우화하는 환영일 듯싶다.
정진경 시인
busan.com/2014-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