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뫼
○신경림○
여든까지 살다가 죽은 팔자 험한 요령잡이가 묻혀 있다 북도가 고향인 어린 인민군 간호군관이 누워 있고 다리 하나를 잃은 소년병이 누워 있다
등 너머 장터에 물거리를 대던 나무꾼이 묻혀 있고 그의 말 더듬던 처를 꼬여 새벽차를 탄 등짐장수가 묻혀 있다 청년단장이 누워 있고 그 손에 죽은 말강구가 묻혀 있다
생전에는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이들도 있다 부드득 이를 갈던 철천지원수였던 이들도 있다 지금은 서로 하얀 이마를 맞댄 채 누워 묵뫼 위에 쑥부쟁이 비비추 수리취 말나리를 키우지만
철 따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으면서 뜸부기 찌르레기 박새 후투새를 불러 모으고 함께 숲을 만들고 산을 만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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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1936~ )申庚林 충북 충주 출생 1956년 [문학예술]에[갈대]로 등단,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공초문학상, 대산문학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상 수상 시집 [농무][새재][달넘세][남한강]
[가난한 사랑의 노래][길]...
묵뫼는 오랜 세월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봉분이 내려앉고 손실된 무덤들이 모여 있는 묘지다. 묘비도 없을 터이니 누가 묻혀 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시인은 이곳에서 저마다 우리 민족의 고난을 온몸으로 겪으며 저승으로 간 시신 들을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그들은 생전에 상하좌우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처절한 갈등을 겪었다. 이제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 “함께 숲을 만들고 산을 만들고”, 마침내 모든 대립과 분열 을 극복하고 유기적 공존의 세계를 이룩했다. 시인은 묵뫼의 과거를 복원하여 바람직한 미래를 예시하고 있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6.24
http://blog.daum.net/kdm2141/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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