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 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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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1970~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1996년 《창작과비평》겨울호에 시〈대관령 옛길〉등
열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물 밑에 달이 열릴 때》
2004년 제49회〈현대문학상〉, 2007년 제9회〈천상병시상〉을 수상
빨갛게 익은 대추는 오른쪽 끝, 즉 동쪽에, 단정하게 껍질을 깎아 흰 속살이 드러난
밤은 왼쪽 끝, 즉 서쪽에 놓는다. 제사상 진설의 기준이 되는 홍동백서(紅東白西)다.
소나무·참나무·감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의 가장 많은 토종수목인 대추나무와 밤나무는
6월 중순이 되어서야 느지막이 꽃이 핀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향이 그윽한 대추 꽃과
모양이 독특하고 물씬한 향기를 풍기는 밤꽃이 만발해 꽃벌이 날아들면, 여름의 이
자연현상이 결코 자기의 업적이 아닌데도, 말할 수 없는 내면적 감동과 소리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성은 물론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의 떨림을 이
처럼 단아한 언어로 바꾸는 일은 선택된 시인의 몫이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joins.com/2014.06.26
대추나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