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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국=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진눈깨비』,『겨울 반딧불』, 『하늘가는 보리새우』,
『서울은 가짜다』,『백록을 기다리며』등 5권의 시집,
시조선집『개망초 마을의 풍경』,
제주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래기』
냄새도 소리를 가졌는지, 힐끗 스쳐본 것만으로도 산골 개울 물소리가 나요.
목젖이 환히 다 보이는 파안의 꽃. 틈서리 비켜선 듯 어디서건 당당하고 도도한 건
인류보다 먼저 이 지구를 차지했던 기득권 때문인가 봐요. 눈 맞추려면 먼저 무릎
부터 꿇게 하는 키 작은 꽃일수록 더 천연덕스럽게 텃세를 한다니까요.
저들의 빛깔과 향기의 비밀은 누군가를 유혹해 제 종족을 퍼트리기 위한 고도전술
이라지만 공짜론 안 해요. 환대와 꿀로 극진히 대접하죠. 사람 냄새가 꽃에서 난다
지만 꽃에서도 사람 냄새가 나는군요. 꽃을 보면 마음보다 손이 먼저 가는데 차마,
꺾지 못하는 건 금방 낯빛이 애잔해져서 꺾으려는 손목을 어루만져 주네요.
어쩜 저들의 의도는 인간의 영혼과 몸까지 관리대상인지도 몰라요. 사람의 손이
관리하는 게 아닌 저들이 우리를 고용하는, 그래서 꽃의 눈에는 우리가 벌 나비 혹은
바람이나 여타 조건으로 뵌다는 거 아닙니까.
박정애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