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저문
골기와 집에
오동꽃,
떨어져서,
다 저문
골기와 집에
오동꽃,
수북하다.
-이종문 '오동꽃'-
('현대시조 100인선'·태학사·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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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1955년 경북영천 출생
1993년 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저녁밥 찾는 소리),(봄날도 환한 봄날),
(정말 꿈틀, 하지 뭐니)등 논저로(고려전기 한문학연구),
(한문 고전의 실증적 탐색),(인각사 삼국유사의 탄생)등
현재 계명대 사범대 교수로 재직중
한 가대(家垈)가 저물고 해찰궂은 바람만 담장을 넘나드는 집, 한때는 더운 사람 훈기로
가득했겠지요. 마당엔 저 오동꽃같이 환한 아이들 웃음소리와 안채 아낙들의 조신하고
다정다감한 내방가사가 있고, 장독대 근처엔 치자나무 우물가엔 앵두나무도 있었겠군요.
영혼의 집인 우리 몸이 거처하는 집, 그 집에서 일어나는 우리들의 일상이 종교라면
우리들의 몸은 사원이지 않았나요.
그러나 사람이 살다가 떠난 빈집을 지키는 오동나무는 시간 밖에 서 있군요. 다 저문
빈집에서 때 맞춰 꽃을 피우고 떨어질 때를 알아 떨어지는 저 오래된 오동나무는 아마도
선대 조상이 살아생전에 심었겠군요. 저 집 가족과 한생을 살아낸 뿌리의 기반은 날로
튼튼하여 오늘은 그루터기에 오동꽃이 수북하네요.
생명이 일어난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거, 제자리에 눕는다는 거, 참 간단하고 명료하지만
사람의 일은 그러지를 못 하네요. 모든 걸 하나로 쓸어 모아 원래대로 내려놓는다는 게
생의 완성이란 걸 알지만 내 속에 들어 있는 마음 하나도 제자리에 놓지 못하고 사는 게
사람살이니까요. 그런데 자연은 저절로 그러함으로 피었다 지는 일이 참 자연스럽군요.
다 저문 골기와 집에 오동꽃이 떨어지고, 떨어져서, 수북한 저 집은 너무나 고요해서 바람
만 불어도 오동나무 그루터기에서 거문고소리가 저절로 들릴 것 같네요. 봉황은 그렇다
치고 아침이면 까치가 와서 놀겠군요.
박정애 시인
busan.com/2014-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