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이상범◇
꽃구름 훔치고 별빛도 따 먹었다
땅은 온통 풀꽃세상 끝없는 꽃대궁 파문
꽃 하나 영역은 비좁아도 무한 바다를 누린다.
묵정밭엔 개망초꽃 강아지꽃 달맞이꽃 꽃들이 들어 올린 하늘이 사계를 요리한다 인간은 꽃들의 연주에 귀와 눈을 가리울 뿐.
-이상범 '야생화- (시집 '오두막집 행'·토방·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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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1935년 충북 진천 출생.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日蝕圈>이 당선되어 등단 1963년 ≪시조문학≫에 <碑>가 3회 추천 완료 시집<신전의 가을><별><풀빛화두>등 18권 출간.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등 수상.
세상의 꽃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 어떤 이름으로 핀들 꽃이 아닌 게 어디 있겠어요. 야생화란 저들 나름의 조건에 맞는 원래의 제자리가 있기 마련이죠. 인간의 간섭을 천성적으로 받기 싫어하는 구성원들이 안정된 사회를 살면서 군락을 이루는 야생의 식물들에도 사회적 요소가 다 들어 있겠지요.
수십억 년 전부터 진화해 온, 진화의 결과로 인간의 선배가 된 식물의 세계는 윤리도덕 이 필요 없다는군요. 그러니까 저렇게 마냥 웃고 살지요. 제 각각의 의지대로 한껏 자유 를 누리지만 갈등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작고 여린 것일수록 더 당당하고 진한 몸 냄새 를 가졌군요.
저들의 몸 냄새를 우리는 향기라 말하지만 어쩌면 저들의 숨결은 사람 숨소리보다 더 깊고 커서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건 아닌지. 암튼 사람과 교감이 가능한 말과 소를 길들여 힘을 빌리고 가축했듯이 필요에 의해 재배하는 유실수와 농작물과 밭작물의 수많은 이름들이 원래는 다들 야생이지 않았나요.
인간에게 식민화된 동식물은 어질고 착해서 다스리는 대로 따르지만, 처음 야생에서 인간의 선택으로 재배되는 귀화요초는 의존형이죠. 좋아 사는지 마지못해 사는지 죽지 못해 사는지 돌보지 않으면 생장을 힘들어하네요.
박정애 시인 busan.com/2014-09-26



※ 10월부터는 오정환 시인의 '맛있는 시'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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