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학 한 마리가
흘러가고 있다
베네치아의
논물 위로
누군가 몰래
벗어놓은 내의처럼
속도 없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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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1976년 ~ )광주광역시 출생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꽃 피는 공중전화〉 외 5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고래와 수증기》
2009년 제3회 「시작문학상」, 제17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제28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불편' 동인으로 활동.
고고한 새 한 마리가 죽어 논물을 따라 떠내려간다. 희고 깨끗했던 시간 속에서 사랑
했을 것이고 이별했을 것이고 며칠 밤낮을 울었을 것이다. 그렇게 속을 다 내어준 뒤
누군가 몰래 벗어놓은 헐렁한 내의처럼, 텅 빈 몸으로 떠내려간다.
그 모습은 마치 당신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나의 시간을 돌이키게 하고 우리의
겉과 속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황병승·시인>
joins.com/201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