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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의 미간
◇정공량◇
불을 켠다 적막 속에
아픔의 알레그로
흰꽃들이 돌아눕는
세월의 끄트머리
오늘은 약속도 없는지
바람들이 흩어진다
싱싱하다 여윌 때까지
오로지 빛낼 독거
차고 넘는 시간들의
막막한 불연속선
흔들어 낮은 깃발의
그리움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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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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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량=(1955~ )전북 완주 출생.
198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조시집으로 <절망의 면적 > <기억 속의 투망질>
<내 마음의 공중 누각> <마음의 양지><꿈의 공터>
시조선집 <꿈의 순례>. 자유시집 <우리들의 강>
<마음의 정거장> <세상의 뜬소문처럼><누군가 희망을 저 별빛에>
문학평론집 <환상과 환멸의 간극> 시선 발행인 및 편집주간
적막은 십일월에 가장 깊이 어울리는 마음의 경지. 휑해진 나무들 사이 때문만은 아니
다. 구시렁대며 떠나는 가랑잎들 때문만도 아니다. 추위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가는 바람
사이, 더 쓸쓸해지는 사람들 사이의 그 무엇들이 다 적막을 거든다.
그런 중에 만나는 '아픔의 알레그로'는 어떻게 번지는가. '경쾌하고 빠르게' 아픔을 줄여
줄까, 늘여줄까. 어쩌면 아픔을 넘어가려고 '알레그로'를 지긋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흰
꽃들이 돌아눕는/ 세월의 끄트머리'를 그래도 돌아보는 것은 바람이다. 어디나 살피고
만지고 들여다보는 것은 바람의 일. 높거나 낮거나 춥거나 덥거나, 바람은 사람의 골목
과 마음 고샅을 헤쳐 다닌다.
'적막의 미간'에도 그런 바람이 스치리라. 차고 넘치는 시간의 '막막한 불연속선'을 살아
낼 힘을 얹기도 하리라. 그래서 적막의 쓸쓸함을 앓되 상하지만 않는다면 반려처럼 더 깊
어져도 좋을 것이다.
정수자 시조시인 |
2014-11.28/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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