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
◇최금진◇
과거는 토굴이었고, 손바닥엔 언제나 더러운 때가 끼어 있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친구들의 당돌한 악수가 무서웠다
학교에선 숙제를 안 해온 벌로 손바닥을 맞고
아이들은 입을 가리고 웃는 나를 계집애라고 놀렸다
그 손이 늙은 것이다
쩌릿쩌릿 경련도 오고, 각질이 때처럼 일어난 손이
남에게 싹싹 빌던,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기 위해 입을 가리던
내 손이 곁에 누워 나를 쓰다듬는다
사랑 얘기, 때려치운 직장 얘기, 성경책을 찢어버린 얘기도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나는 토닥토닥 내 손을 두드린다
이 손으로 남은 생애 동안 밥이나 퍼먹다 갈 것이다
손 위에 바지랑대처럼 근심을 괴어놓고
바람좋은 날엔 어머니의 헐렁한 속옷이라도 널어야 한다
남은 게 고작 손 하나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손은 슬며시 반대편 손을 잡아 가슴팍 위에 얌전히 올려놓았다
처음부터 이런 순간을 알고 있었다는 듯
심장이 뛰는 소리, 보일러 도는 소리, 창밖엔 눈이 내리고
눈을 감으면 어둠이 사분사분 속삭이는 소리, 나야, 나,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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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1970∼)충북 제천에서 출생
1994년 춘천교육대학교를 졸업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1998년 제4회 <지용신인문학상> 과 2001년 <창작과비평>
신인시인상을 수상 시집『새들의 역사』(창비, 2007)이 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친구들의 당돌한 악수가 무서웠’단다. 어린 시절의 잦은 전학은 외계
에 대해 낯설어하며 겉도는 감정을 평생 갖게 할 테다. 예민하고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사람은 더욱 그러할 테다. 호감인지 비호감인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평가 받는 악수
의 순간들에 겪은 불안과 긴장이 새겨진 손을 화자는 가만히 들여다보며 지난 삶을 돌아
본다.
가난하고 숙제도 곧잘 빼먹던 어린 날의 때가 꼬질꼬질하지만 야들야들 여렸던 그 손이 지
금은 ‘쩌릿쩌릿 경련도 오고, 각질이 때처럼 일어난 손이’ 됐구나. 그 세월 동안 ‘남에게 싹
싹 빌던,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기 위해 입을 가리던’ 손이란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처음 잡던 떨리는 손이랄지, 월급을 받아 어머니의 꽃팬티를 사던
손이랄지, 날아갈 듯 종이 위를 달리던 손이랄지, 그런 환한 기억보다 비루하고 슬프고
외로운 기억에 휩싸이는 화자다. 내미는 손을 뿌리친 세상! 때로는 내가 세상을 뿌리쳤지.
사랑에 직장에 신앙에 훠이훠이 작별의 손을 흔들었지. 그래서 ‘남은 게 고작 손 하나뿐’!
적수단신(赤手單身)의 외로움과 자기 환멸에 사무치며 화자는 내뱉는다. 마주잡을 손도 없
는 ‘이 손으로 남은 생애 동안 밥이나 퍼먹다 갈 것이다’. 이제 와서 곡괭이를 잡을 것이냐,
칼을 잡을 것이냐. 펜을 못 잡아도 끝끝내 숟가락은 놓지 않겠지. 최금진 시를 읽을 때면
거 기 시리게 배어 있는 자의식이 가슴에 흘러들어와 모래알처럼 서걱거린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341>
dongA.com/201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