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리안에게
◇김경주◇
황혼에 대한 안목(眼目)은 내 눈의 무늬로 이야기하겠다
당신이 가진 사이와 당신을 가진 사이의 무늬라고 이야기하겠다
죽은 나무 속에 사는 방(房)과 죽은 새 속에 사는
골목 사이에 바람의 인연이 있다
내가 당신을 만나 놓친 고요라고 하겠다
거리를 저녁의 냄새로 물들이는
바람과 사람을 시간의 기면으로 물들이는 서러움.
여기서 바람은 고아(孤兒)라는 말을 쓰겠다
내가 버린 자전거들과 내가 잃어버린 자전거들 사이에
우리를 태운 내부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
귀가 없는 새들이 눈처럼 떨어지고
바다 속에 내리는 흰 눈들이 물빛을 버린다
그런 날 눈을 꾹 참고 사랑을 집에 데려간 적이 있다고 하겠다
------------------------------------------------------------
▶김경주=(1976~ )광주 출생.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 등.
기미는 낌새다. 사전적으로, 눈치채거나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것. 그런데
이 시인, 그 기미를 절묘한 솜씨로 구축한다. 그 구축력이 비유 사이 최대한 거리를
가능케 하고 흔들고 다시 구축한다. 이어지는 피비림과 우주적 포즈가 전혀 피비리
지 않고, 포즈적이지 않다.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말, 낭만주의를 벗는다.
‘젊은 문학 선언’에서 그가 외친 ‘승리 없는 평화’ ‘젊음의 패기와 치기’를 낡은 말로
만들듯이.
<김정환·시인>
joins.com/201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