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 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 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지고
길은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그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 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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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1956~)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와 고려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1982년 동인지 『시와 경제』의 창간동인
시집 『밤에 쓰는 편지』『가만히 좋아하는』등
제6회 신동엽창작기금(1987)과 제50회 현대문학상(2005)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시인만큼 생의 태도가 겸손한 사람을 찾기 힘들지만, 이 시에서 그는 생로병사의 슬픔
일체를 간절한 마음의 치열한 단정(端正)에 담아내는 식으로 김수영과 또 다른 길을 내려
는 야심이 만만하다.
단정이야말로 그의 가장 튼튼하고 가장 미래지향적인, 그러니까 죽음에 이르는 미학이다.
순환구조가 순환할수록 단정으로 아름다움의 슬픈 깊이를 더해가는 참으로 희귀한 현대시
한 편.
<김정환·시인>
joins.com/2014.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