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와 편지
◇오규원◇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눈송이가 몇 날아온 뒤에 도착했습니다
편지지가 없는 편지입니다 편지봉투가 없는 편지입니다 언제 보냈는지 모르는 편지입니다
발신자도 없는 편지입니다 수신자도 없는 편지입니다
한 마리 새가 날아간 뒤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 것을 알았습니다
돌멩이 하나 뜰에 있는 것을 본 순간 편지가 도착한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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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1941~2007) 1941년 경남 삼랑진에서 출생.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 시집『분명한 사건』, 『순례』,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오규원 시인은 이 시가 실린 시집을 펴내면서 스스로를 "물물(物物)과 나란히 앉고 또 나란히 서서 한 시절을 보낸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나란히'라는 말은 얼마나 좋은가. 이 말에는 우월한 지위가 따로 없다. 오직 평행(平行)이 있을 뿐이다.
시인은 눈송이와 한 마리 새, 그리고 돌멩이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눈송이, 새, 돌멩 이가 그들 각각의 언어로 우리에게 편지를 보낸다니 얼마나 멋진가) 그 교신에는 구애받는 형식도 없다. 소인(消印)도 발신자도 없이 배달되어 온, 한 통의 편지이다.
둘 사이에서의 접촉은 서로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이해와 긍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따라 움직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평행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눈송이와 나란하고, 새와 나란하고, 돌멩이와 나란하다. 어디 이뿐일까. 우리는 모든 존재들과 나란하다.
문태준 시인 |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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