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개울가 밭두렁에
왜가리 한 마리가 외발로 서 있다
서천(西天)으로 돌아가기 전 달마처럼
잔뜩 웅크린 채
눈이 채 녹지 않은 허연 밭뙈기를 바라보고 있다
잿빛 등에는 해진 짚신 한 짝,
눈이 다 녹으면 그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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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1965∼)강원도 강릉 출생.
1990년 《현대시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각각 등단.
시집 <강릉,프라하,함흥> <숨결>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터미널> 산문집 <곱게 싼 인연>등 다수.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시인시각 작품상, 현대불교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왜가리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멈춰 서 있다. 미동도 없이 한 획처럼. 화살이 과녁의 복
판을 뚫고 단단하게 박힌 것처럼. 침묵이라는 과녁의 복판에 왜가리 한 마리가 서 있다.
시인은 그 왜가리를 보면서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 좌선했던 달마를 떠올린
다. 선(禪)에 통달했던 달마를 떠올린다. 왜가리가 바라보고 있는 시선의 끝에는 눈이 녹
지 않은, 응달의 땅이 있다(이 '허연 밭뙈기'가 근심과 망념 덩어리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
일까
왜가리 한 마리가 면벽 수행을 하고 있다. 왜가리는 운수납자(雲水衲子)여서 해진 짚신 한
짝 외에는 가진 것이 없다. 두루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는 까닭에 거처를 두지도 않는다. 웬
일일까. 저 왜가리의 벽관(壁觀), 저 침묵이 천둥보다 크고 무섭다. 혹독한 겨울의 대공(大
空)을 깰 듯하다.
문태준 시인 |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