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8. 08:55ㆍ″``°☆시들의모음/◈행복한― 詩
몰 핑 -김철식-
해 저무는 저녁이면 강변 송신탑 꼭대기에 오르곤 하지 바람을 거슬러 비껴 오르면 굽이치는 저 강물의 진짜 거처가 어딘지 알 수 있지
허공의 한기(寒氣)도 건드리지 못하는 그리움의 정체도 만져지지 더 높은 곳이 도심으로 많이도 내려다보이지만 여기는 정상, 거미처럼 착 달라붙어 내 몰락의 정상을 소리 높여 노래할 수 있지
들어주는 이 누구 없고 분주한 세상 풍경은 아득히 멀고 혼자일 때 파탄의 신호는 더욱 감미로워 귀만 가만 열어두고 저 격세(隔世)의 송신음을 좇아 무한의 아래로 내려가지
전율에 떨면서 사랑이라는 혼선(混線)의 물바람을 가르면서 몸 구석구석에서 타락을 꿈꾸는 섬모들이 길을 내주지 잊혀지지 않는 저녁의 어두운 시간들은 언제나 탑의 철침으로 먼저 와 꽂히고 순간의 몰핑으로 아우성치며 절정에 오르지
밀어내도 밀쳐지지 않고 배척해도 굴복하지 않는 시간의 고압선을 타고 종생(終生)을 향해 치닫지
아, 그러면 그제야 환히 보이는 것 일몰의 흔적들 뒤로 간절히 내게 구애하는 것 기억이 형질 변화를 일으키며 내지르는 환희 비루한, 너무나 비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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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식=(1967∼ )경남 사량도에서 출생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6년 계간 <문학동네>에 「돌 줍는 여자」외 4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기억의 청동숲』(문학동네, 2001)가 있다.
어느 날 강변을 거닐던 화자는 송신탑 아래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을 테다. 꽁초를
강물에 던진 뒤 문득 송신탑을 올려다봤을 테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송신탑을 기어올랐
을 테다. 송신탑에 회오리치는 ‘바람을 거슬러 비껴’ 올라 꼭대기에 다다른 화자. ‘굽이
치는 저 강물의’ 끝과 끝이 한눈에 펼쳐지고 강 건너 도심의 빌딩들이 내려다보인다.
강바람 속 송신탑 꼭대기에 위태롭게 매달려 절규하듯 외치는 화자의 ‘야호!’ 소리 들릴
듯하다. ‘여기는 정상, 거미처럼 착 달라붙어/내 몰락의 정상을 소리 높여 노래할 수 있
지’, 그렇게 화자는 ‘해 저무는 저녁이면/강변 송신탑 꼭대기에 오르곤 하지’ 하게 됐을
테다. ‘격세(隔世)의 송신음’이나 ‘사랑이라는 혼선(混線)의 물바람’에서 화자의 퇴행 욕
구에 이르는 원망이 읽힌다. 세상은 화자가 원치 않는 모양으로 화자에게 아랑곳없이 분
주하게 변했다.
되는 일도, 되게 하려는 의욕도 없는 화자는 사랑도 순탄치 않다. 그래서 절박한 짐승처
럼 송전탑에 오르면 이 몰락의 왕자에게 ‘잊혀지지 않는 저녁의 어두운 시간들’이 벼락
처럼 꽂히는데, ‘순간의 몰핑으로 아우성치며 절정에 오른단다’. 자기 파괴적 충동으로 치
닫는 그 쾌감이 다시 또 현란하게 생의 충동으로 뒤바뀌는 모핑(morphing)! ‘비루한, 너무
나 비겁한’, 그러나 너무나 달콤한 환희일 테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366> dongA.com/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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