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8. 09:22ㆍ″``°☆시들의모음/◈행복한― 詩
발베개 ◇정충화◇ 종각역 지하도를 지나다가 보았다 잠에서 깨지 않은 어느 노숙자의 한쪽 다리가 천장을 향해 들려 있는 것을 치켜진 무릎 끝이 뭉툭 잘려 있는 것을 잘린 무릎의 드러난 살갗으로 햇살에 비친 유빙(遊氷)처럼 푸른 빛이 내려앉아 그를 깨우고 있었다 사라진 발은 운동화도 벗지 않은 채 그의 머리 밑에 베개로 괴어져 있었다 깊이 팬 주름 고랑마다 노숙의 이력이 겹쌓인 얼굴 아래서 베개가 되어 함께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낮 동안 그의 몸을 떠받치던 발이 밤이면 다리를 빠져나와 고단한 잠을 베어줬던 것이다 ------------------------------------------------------------- ▶정충화=(1959∼ )전남 광양 출생 1981년 전북대학교 졸업 현재 광고대행사에서 신문 편집자로 일함 계간 ‘작가들’ 추천으로 등단 인천작가회의 회원 종각역 지하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기 직전인 이른 아침. 그 시각 거길 지나는 이는 출근길이거나 퇴근길이거나, 밤이 지나 해가 뜨도록 술을 마시고 명정 (酩酊) 상태로 집을 향하는 길일 테다. 햇살은 계단참까지 내려와 비추는데, ‘무릎 끝이 뭉 툭 잘려 있는’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한 노숙인이 혼곤히 잠들어 있다. 운동화가 신겨진 의족을 머리 밑에 베고 있단다. ‘깊이 팬 주름 고랑마다/노숙의 이력이 겹쌓인’ 그 얼굴. 아아, 무정! 이 움찔한 생의 현장을 화자는 비정하리만큼 세밀히, 생생히 그려 한 컷의 사회파 사진처럼 전한다. 그러나 시인의 눈은 사진기의 렌즈보다 섬세한 것. 이른 시각의 햇살로나 노숙인의 허술한 잠자리 행색으로나 더운 계절임이 분명한데, ‘잘린 무릎의 드러난 살갗’에서 삶의 추위가 어려 있는 ‘유빙(遊氷)처럼 푸른/빛’을 보는 화자다. 그리고 ‘낮 동안 그의 몸을 떠받치던 발이/밤이면 다리를 빠져나와/고단한 잠을 베어줬던 것이’라고, 그 노숙인의 삶을 밤이나 낮이나 지켜주는 ‘발베개’의 다행스러운 덕을 알아본 다.재작년 12월 31일 밤 혜화역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광판을 보니 곧 0시였다. 술 취한 청춘 남녀가 바글거리는 지하 플랫폼에서 혼자 새해를 맞는 기분이 스 산했다. 회현역에 내리는 사람도 나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개찰구를 나서 계단을 오르는 데 여기저기 노숙인들이 누워 있었다. 연휴를 앞둬 유독 어두운 숭례문시장을 지나는 내내 그 노숙인들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360> dongA.com/2015-01-12 http://blog.daum.net/kdm2141/5329
발베개
◇정충화◇
종각역 지하도를 지나다가 보았다 잠에서 깨지 않은 어느 노숙자의 한쪽 다리가 천장을 향해 들려 있는 것을 치켜진 무릎 끝이 뭉툭 잘려 있는 것을
잘린 무릎의 드러난 살갗으로 햇살에 비친 유빙(遊氷)처럼 푸른 빛이 내려앉아 그를 깨우고 있었다
사라진 발은 운동화도 벗지 않은 채 그의 머리 밑에 베개로 괴어져 있었다 깊이 팬 주름 고랑마다 노숙의 이력이 겹쌓인 얼굴 아래서 베개가 되어 함께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낮 동안 그의 몸을 떠받치던 발이 밤이면 다리를 빠져나와 고단한 잠을 베어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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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화=(1959∼ )전남 광양 출생 1981년 전북대학교 졸업 현재 광고대행사에서 신문 편집자로 일함 계간 ‘작가들’ 추천으로 등단 인천작가회의 회원
종각역 지하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기 직전인 이른 아침. 그 시각
거길 지나는 이는 출근길이거나 퇴근길이거나, 밤이 지나 해가 뜨도록 술을 마시고 명정
(酩酊) 상태로 집을 향하는 길일 테다. 햇살은 계단참까지 내려와 비추는데, ‘무릎 끝이 뭉
툭 잘려 있는’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한 노숙인이 혼곤히 잠들어 있다.
운동화가 신겨진 의족을 머리 밑에 베고 있단다. ‘깊이 팬 주름 고랑마다/노숙의 이력이
겹쌓인’ 그 얼굴. 아아, 무정! 이 움찔한 생의 현장을 화자는 비정하리만큼 세밀히, 생생히
그려 한 컷의 사회파 사진처럼 전한다.
그러나 시인의 눈은 사진기의 렌즈보다 섬세한 것. 이른 시각의 햇살로나 노숙인의 허술한
잠자리 행색으로나 더운 계절임이 분명한데, ‘잘린 무릎의 드러난 살갗’에서 삶의 추위가
어려 있는 ‘유빙(遊氷)처럼 푸른/빛’을 보는 화자다.
그리고 ‘낮 동안 그의 몸을 떠받치던 발이/밤이면 다리를 빠져나와/고단한 잠을 베어줬던
것이’라고, 그 노숙인의 삶을 밤이나 낮이나 지켜주는 ‘발베개’의 다행스러운 덕을 알아본
다.재작년 12월 31일 밤 혜화역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광판을 보니 곧 0시였다. 술 취한 청춘 남녀가 바글거리는 지하 플랫폼에서 혼자 새해를 맞는 기분이 스
산했다.
회현역에 내리는 사람도 나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개찰구를 나서 계단을 오르는
데 여기저기 노숙인들이 누워 있었다. 연휴를 앞둬 유독 어두운 숭례문시장을 지나는 내내
그 노숙인들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360> dongA.com/2015-01-12
http://blog.daum.net/kdm2141/5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