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털실로 뭐 할까 물고기는
물고기를 멈추지 않고 돌아다닙니다.
끌고 가고 끌려가고
이 털실은 돌아다닙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갑니다.
이 선반 위에는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습니다.
이 폭설은 소원을 이룬다.
폭설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털실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털실은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갑니다.
아무 형체도 짓지 않습니다.
이 털실은 집어 올릴 수 없습니다.
이 볕은 풀린다.
이 털실은 풀린다.
끝없이 풀리기만 한다.
이 털실은 화해하지 않는다.
그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털실 뭉치를 달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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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명=(1965~ )서울 출생.
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등.
시론집 『횡단』. 현대시작품상·노작문학상 수상.
이 털실 뭉치는 무엇일까. 이 털실 뭉치로는 목도리나 장갑을 짤 수 있을까. 다시 보니
이 털실 뭉치는 눈 뭉치 같다. 아니 이 털실 뭉치는 폭설 같다. 아니 폭설의 두 손이 뭉
쳐놓은 눈덩이 같다.
어쨌든 굵은 가닥의 털실이 있고, 또 여기 털실 뭉치가 있다. 실패에 감듯 털실을 감으
면 뭉치가 되기도 하고, 볕이 풀리듯 뭉치로부터 풀려나와 한 가닥 털실이 되기도 한다.
뭉치고 풀리는 이 둘 사이의 운동과 변화가 있을 뿐이다.
마치 누나가 입던 스웨터를 여러 날에 걸쳐 풀어 내가 입을 옷을 여러 날에 걸쳐 짜던,
그 어느 겨울날 내 어머니의 손처럼
문태준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Chosun.com/2015.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