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한바탕 먹고 떠난
식탁 위에는 찢긴 햄버거 봉지와
우그러진 콜라 패트병과
입 닦고 던져놓은 종이 냅킨들이 있다
그것들은 서로를 모르고
가까이 혹은 조금 멀리 있다
아이들아, 별자리 성성하고
꿈자리 숭숭한 이 세상에서
우리도 그렇게 있다
하지만 우리를 받아들인 세상에서
언젠가 소리 없이 치워질 줄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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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李晟馥, 1952~ ).경상북도 상주 출생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현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뒹구는 돌은 언제 잠을 깨는가》《오름 오르다》외 다수
1982년 2회「김수영문학상」, 1990년 4회「소월시문학상」,
2004년 12회「대산문학상」, 2007년 53회「현대문학상」을 수상
식탁 위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햄버거 봉지와 콜라 페트병과 종이 냅킨들! 이 양식(洋式)
생활상의 폐기물들이 우연의 조합으로 별자리 구도(構圖)를 만든다! 이 일상적인 풍경과
구도에서 별자리를 적시(摘示)해내는 시인의 시력(視力)이라니! 시인은 “별자리 성성, 꿈
자리 숭숭”으로 가망 없는 현실과 꿈을 배반하는 삶을 축약한다.
별자리를 머리에 이고 살지만 번번이 꿈은 잃고 전전긍긍하다 가뭇없이 사라지는 게 인생
이다. ‘언젠가’라는 부사가 가슴에 무겁다. 그 ‘언젠가’를 모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언젠가’
로 생각해보지 않은 데 우리의 몽매함이 있다. 생명의 섭리와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법칙
을 다 꿰어도 한 치 앞에서 일어날 제 인생의 일들에 대해서는 깜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