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6. 16:02ㆍ″``°☆시들의모음/◈행복한― 詩
춘신(春信)
◇유치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 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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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1908∼1967)시인, 호는 청마(靑馬) 1908년 경남 통영 출생, 1927년 연희 전문학교 문과 입학 1931년 시(정적)을 "문예월간"에 발표하면서 등단 1957 한국 시인협회 초대 회장 1967 별세
아파트 등의 공용주택이 주거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서울에 거닐 만한 공원이 많아진 건
다행한 일이다. 그 많던 마당과 뜰에 살던 초목들과 거기 깃들이던 작은 동물들을 우리는
이제 공원에서 볼 수 있다. 물론 바로 그 꽃, 바로 그 나무, 바로 그 동물들은 아니다. 그들
은 갈 데 없이 뿌리 뽑히고 쫓겨나고, 뭉개지고 파묻혔다. 이 시의 살구나무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지금쯤 꽃망울을 맺고 있기를, 그 앞의 창도 여전하기를, 그래서 조만간‘꽃등인
양 창 앞에’ 피어오르기를 빌어본다.
제목 그대로 ‘이른 봄에 꽃이 피고 새가 울기 시작하는’ 풍경을 잡아 ‘춘신(春信)’, 봄소식 을 전하는 시다. 시인의 방심한 듯 부드러운 시선 속에 날아든 춘신, 살구꽃과 작은 멧새 가 뽀야니 떠오르도록 섬세한 필치로 그려졌다.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라니 아침 녘 이겠다. 아침 햇살이 하얀 살구꽃의 겹겹 꽃잎을 투과해 나뭇가지에 연분홍 반그림자를 드리웠으리라. 거기 작은 멧새가 날아든다. 꽃 핀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고개를 갸웃거 리고 까딱거렸으리라.
그 모습을 보며 시인은 이 작은 것이 ‘적막한 겨우내’ 어찌 견디고 살아냈느뇨, 안쓰럽고 대견하다. ‘앉았다 떠난 그 자리에 여운 남아’, 새가 날아간 뒤의 미세한 ‘한들거림’이 시 인의 여린 마음을 건드린다. ‘작은 멧새’ ‘작은 깃’ ‘작은 길’, 각 연에 ‘작은’이 들어 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는 작은 새, 약하고 작은 존재들에 대한 시인의 염려와 사랑이
묻어난다.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그 길을 품어 보는 시인
의 따뜻한 마음이여, 큰마음이여.
황인숙 시인<382> dongA.com/201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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