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을 떠도는
찌르라기떼 속에
환한 봉분 하나 보인다
2
누군가 찌르라기 울음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
봄 햇빛 너무 빽빽해
오래 생각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저 새떼들이 나를 메고 어디론가 가리라,
저 햇빛 속인데도
캄캄한 세월 넘어서 저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가로
데리고 가리라는 것을 안다
찌르라기떼 가고 마음엔 늘
누군가 쌀을 안친다
아궁이 앞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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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1965~ )경기도 덕적에서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등단
1991년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
1999년 「마당에 배를 매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
시집으로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젖은 눈』 등이 있다.
화자는 들판이나 산기슭의 아궁이를 때는 집에 살고 있다. 도시의 분답을 피한 이 생활
이 형편에 따라서인지, 마음이 이끌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시에 적요감이 배어난다. 봄날
의 이른 저녁, 아직 햇빛은 창창하지만 대기에 찬 기운이 돌기 시작할 때 ‘찌르라기떼가
왔’단다. 찌르레기 울음소리는 들어본 바 없지만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말이
있듯이 ‘찌르찌르찌르’ 울 것 같다. 떼로 우짖으면 자글자글 끓는 듯할 그 소리가 ‘쌀 씻어
안치는 소리’라니 참으로 그럴싸한 참신한 표현이다.
화자는 찌르레기 소리가 소란해서 하늘을 올려다봤을까, 아니면 그 소리가 멀리서 들릴
때부터 지켜봤을까. 찌르레기 떼 우짖는 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점점 작아졌을 테다. 새 떼
가 드리우는 한 폭의 커다란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와서 화자를 덮치고는 빠르게 지나갔을
테다. 빛과 그림자, 소란과 정적의 역동적 대비가 현기증 날 만큼 생생하다. 정적(靜的)인
묘사의 세밀함으로 시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장석남의 힘!
‘찌르라기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저녁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
을 떠도는/찌르라기떼 속에/환한 봉분 하나 보인다’, 찌르레기는 어디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돼야 우리나라에 날아드는 새다. 멀어지는 찌르레기 대열의 휜 데가 햇
빛으로 환하게 둥근 것에서 ‘봉분’을 연상하다니, 화자는 아무래도 이생의 쓸쓸한 봄을 지
나는 게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384>
dongA.com/201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