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고요하다
◇최승자◇
검은 활시위 검은 화살 깊고 고요하다
내가 닫아버렸던 고통의 문(門)을 누가 다시 열어놓았을까 가만히 스쳐만 가시라
잠의 꿈결에서인 듯 꿈의 잠결에서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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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1952~ )충청남도 연기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독문과 졸업. 계간 《문학과 지성》 1979년 가을호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즐거운 일기』『기억의 집』『내 무덤, 푸르고 』 『이 시대의 사랑』『즐거운 일기』등 옮긴책『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
활의 효시는 후기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자 시대의 활쏘기는 군자가 인격을 닦기 위해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덕목 중의 하나였다. 노자는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고 하고, 공자는 “활쏘기는 굳이 과녁을 맞혀 뚫는 것에 주 력하거나 능사로 삼지 않는다”고 했다.
시인은 허공을 꿰뚫는 화살에 고통을 뚫고 나가는 삶을 겹쳐본다. 시위에서 쏜살같 이 떠나 일순(一瞬) 허공을 뚫는 화살 한 촉과 세월을 뚫고 나아가는 삶은 대응한다. 혼돈에서 홀연 눈 뜬 것, 열락은 없고 고통 그 자체인 것, 그게 화살이다! 어쩌자고 시위와 화살이 다 검은색일까?
검은 것은 태고의 혼돈이고 우주 처음의 태허(太虛)다. 삶의 현묘함을 꿰어 본 직관이 검은색을 연상했겠지. 화살은 닫아버렸던 고통의 문을 열고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시인은 “가만히 스쳐만 가시라”고 했을까!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3.16
http://blog.daum.net/kdm2141/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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