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씻다 ―山詩 2
◇이성선◇
산이 지나가다가 잠깐
물가에 앉아 귀를 씻는다
그 아래 엎드려 물을 마시니
입에서 산(山)향기가 난다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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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선(李聖善)=(1941~2001) 강원 고성 출생
1970년 문화비평에 [시인의 병풍]외 4편을 발표,
시집 [시인의 병풍(屛風)][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산시]..
1990년 한국시인협회상, 1994년 정지용문학상,
1996년 시와시학상 수상
산은 꿈쩍도 않을 것 같은데 그 육중한 산이 지나간다고 썼다. 수면에 비친 산은 구름처럼
흐르고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무튼 산은 산객(山客) 혹은 산인(山人)처럼 물
가에 앉아 세파를 씻어내려는 듯 귀를 씻는다.
귀를 씻은 후에 상반신을 아래로 굽혀 바닥에 대고 맑게 솟은 물을 마신다. 입안에서는 싱
그러운 산의 냄새가 난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는 어떤 것일까. 시인은 산을 '저 큰/ 비
어 있는 사람'이라고 썼으니 산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는 아마도 덜 욕심 부리고, 덜 분별하
는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이 다른 시편에서 '산에 와서 문답법을/ 버리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 그렇게 길을 가는 것// 이제는 이것뿐'이라고 쓴 것처럼 봄 산에 들거
든 생각과 말을 좀 줄여도 좋겠다.
문태준 시인
Chosun.com/2015.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