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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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1946∼1994)전남 해남에서 출생
1974년 《창작과비평》에 〈잿더미〉를 위시해 시 7편을 발표하며 등단
《진혼가》를 비롯해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 《사상의 거처》, 《이 좋은 세상에》,
시선집 《사랑의 무기》, 《학살》, 《저 창살에 햇살이》,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등 다수를 펴냈다
1991년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 1992년 제6회 「단재상」문학부문상,
1993년 제3회 「윤상원상」, 1994년 제4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했다.
옛 마을 풍경의 서늘한 아름다움이여, 시인의 서늘한 시선이여. 10년이나 투옥 생활을 하도
록 시대의 억압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온몸으로 ‘전사(戰士)의 시’를 쓴 ‘시의 전사’ 김남주.
격정적으로 독설을 분출하던 그 뜨거운 심장에서 이리 지순한 서정이라니. 시인 김남주에
대한 평가는 이념적 평가만이 아니라 예술적 평가도 엇갈린다. 그의 시가 예술에 미달한다
고 평가하는 이들은 시에 정치가 전면에 내세워져 있으며 시어가 사납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그의 시는 마디마디 장단이 딱딱 맞으며 리드미컬하다. 과격한 언어로 펼쳐지는 그
서사에 동의하건 반대하건 거기 뛰노는 맥, 줄기찬 가락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다.
‘저렇게 많은 별이 있구나 하늘에는/그것도 모르고 갑석이 마누라는 일만 하는구나/늦도록
밤늦도록 아이고 허리야/허리 한번 못 펴고 손톱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저렇게 많은 논
과 밭이 있구나 땅에는/그것도 모르고 바보 갑석이는 고향을 뜨자는구나/지게질을 해도 서
울로 가서 하자고/품팔이를 해도 대처에 가서 하자고//저렇게 많은 학교가 있구나 도시에
는/그것도 모르고 재순이 아버지 갑석이는/재순이를 공장으로 내모는구나/열 살 먹은 막내
까지 내모는구나//저렇게 많은 불빛이 있구나 강 건너 마을에는/그것도 모르고 재순이네는
다리 밑에 자리를 까는구나/마침 겨울이라 함박눈이 와서 그들을 덮어주는구나.’(시 ‘재순
이네’) 김남주는 약소국이었던 나라의 사회주의자답게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 농촌과 도시
에서 착취당하며 사는 힘없이 소외된 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시인이 그토록 격렬하게 쟁취
하고자 한 것은 이 하나,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조선의 마음’이었나.
김남주 같은 사람은 드물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불의가 없는 세상, 이 이상적인 사회에 대
한 꿈을 갖고 있더라도 대개는 행동으로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주의자는 항상 패배하
게 마련이다. 김남주가 꿈꾼 세상은 오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세상을 꿈꾸고 꾸준히 써왔기 때문에 반 발짝이라도 그 세상에 다가갔을 것이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440>
dongA.com/201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