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금이 절창이다
◆문인수◆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 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동물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 넣는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것인지 정강이까지 빠지는 침묵.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장 같다. 어디서 저런,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을 보라.
여인네들…… 여남은 명 누더기누더기 다가온다.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최후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치듯 벗어놓으며 저 할머니, 정색이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참말로” 참말로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구나,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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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1945~ )경북 성주에서 출생
1985년 『심상』 신인상에 「능수버들」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는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
『적막 소리』, 『그립다는 말의 긴 팔』, 동시집으로는 『염소 똥은 똥그랗다』
미당문학상, 대구문학상,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금복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대개 여인들의 일터에는 분 냄새도 좀 풍기고 까르르 터지는 웃음과 수다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 노동 현장에는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갯것을 캐는 동안에
는 저마다 개펄 여기저기 뚝 떨어져 있고, 무거운 망태를 ‘정강이까지 빠지는’ ‘뻘’에서
트럭이 기다리는 데까지 옮기는 일은 벅차게 힘들어 숨이 모자란다. 입을 열기는커녕 무
슨 감정도 생각도 들지 않을 테다.
이 고생을 하면 돈이나 많이 생길까. 그렇다면 힘센 남정네도 보일 텐데 죄 여인네들, ‘여
남은 명 누더기누더기 다가온다’. 할머니도 ‘조갯짐 망태를’ 짊어지고 오신다. 아, 고되고
고된 ‘산다는 이 일’! 아마 단단한 땅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는 시인은 숙연해진다.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장 같’단다. 우리가 때로 중얼거리는 ‘돈벌이의 지겨움’은 얼마만 한 엄살
이며 응석인가.
시 속 ‘무성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정리해 주는 단 한 마디 대사, “죽는 거시 낫
겄어야, 참말로” 이 절규를 ‘절창’이란다. 살아 있어 울컥 요동치는 할머니의 심사가 시인
의 숨통을 틔운다.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들’을 또박또박 걸어가는 사람들, 시인의 가
슴에 ‘질펀하게 번지는’ 삶의 ‘만금’.
라디오에서 마침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 주제곡이 남실거리는 푸른 바다처럼, 수평선
멀리 흘러가는 흰 구름처럼 흘러나온다. 휴식과 낭만의 바다가 누구에게는 죽는 것이 낫
겠는 바다다. 공평하지 않은 자연의 형편. 시인 문인수의 눈은 늘 후자에 가 있다.
[황인숙시인의 행복한 시 읽기]<443>
dongA.com/201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