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잠 -이석구-
칠월에 핀 능소화는 주황이 그림자다
혓바닥 무늬처럼 천연스런 색이란 듯
벌 나비 통째로 취한 붉은 빛을 들인다
꽃대는 넝쿨보다 휘청휘청 감기면서
꽃망울 송이송이 더듬어 스민 햇살
꼭 다문 꽃잎을 벌려 입 안 가득 번진다
옷섶을 풀어헤친 곤한 듯 나른한 잠
담장 아래 고양이가 발을 얹고 짚는 허공
바위를 감아올린다 꿈에서도 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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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구=(1960~ ) 충남 청양에서 출생.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및 同 교육대학원 졸업.
2004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으로 『커다란 잎』(천년의시작, 2010)이 있음.
현재 '21세기 시조' 동인
능소화가 도처에서 눈길을 잡아끈다. 능소화는 먹구름 다 쏟은 하늘에 태양이 작열할 때면
더 농염해지는 여름의 꽃이다. 진한 주황의 꽃빛에 나무를 휘어 감고 오르는 습성 때문일까,
능소화는 묘한 관능을 풍긴다. 그래서 그림자도 주황일밖에 없는 칠월의 능소화에 자꾸 눈
이 젖는가.
더위에 지쳐가는 한여름, 비라도 내리면 저항이 불가능하게 낮잠의 유혹이 끈끈해진다. 그
러거나 말거나 능소화는 '고양이가 발을 얹'는 허공을 온몸으로 짚어가며 또 뜨겁게 타오른
다. '꿈에서도 힘을' 쓰는 것은 도리 없이 감겨드는 저 능소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옷섶을 풀어헤친 곤한' 낮잠에 빠졌다 나오면 침을 좀 흘려도 좋으리. 창밖의 능소
화가 환한 낯빛으로 보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으려니.
정수자 시조시인[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