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장석주◆
구름은 만삭이다.
양수가 터진다.
흰 접시 수만 개가 산산이 박살난다.
하늘이 천둥 놓친 뒤
낯색이 파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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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1955~ )충남 논산 출생
1975 ≪월간문학≫ 시부문 신인상에 <심야>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햇빛사냥><완전주의자의 꿈><그리운 나라>
<어둠에 비친다><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어떤 길에 관한 기억><크고 헐렁한 바지>
그야말로 작열하는 태양의 계절이다. 계속 달아오른 태양 아래 세상은 온통 가마솥 속이다.
뜨거워지는 지구 안에서 온갖 생명의 여름나기 전쟁도 갈수록 치열해진다. 이런 상황이 거
듭되면 혹시 사람의 체온도 높아질까. 폭염에 지쳐 늘어져 있다 보면 별생각이 다 든다.
그때 세상을 깨부술 듯 내리쏟는 소나기! 폭염 속 소나기는 반갑기 그지없다. '만삭' 구름의
예고가 없을수록 '양수가 터'지는 난장은 시원하다. 그 기습으로 마구 흐트러지는 거리에는
돌연한 생동(生動)이 넘친다. 바야흐로 '흰 접시 수만 개가 산산이 박살'나는 순간의 가경
(可 驚)! 잠시 후 하늘이 파래지면서 태양은 더 뜨겁게 쏟아지리라. 그래도 소나기 없이는 한
껏 늘어진 한여름 만물의 춤을 만날 수 없다.
몇 년 전 시조를 함께 묶어낸 시인의 시집에서 소나기 한줄기를 시원하게 맞았다. '흰 접시
수만 개'의 박살을 묘파한 즐거운 난장이 짧은 단수 안에서 길게 남는다. 한여름 구름장의 돌
연한 난장, 소나기 죽비가 오늘따라 간절하다.
정수자 시조시인[가슴으로 읽는 시조]
Chosun.com/2015.08.05